[남북정상회담]北 국제무대 복귀 빨라질듯

  • 입력 2000년 4월 11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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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밤 9시반경 서울 한남동 관저에서 휴식을 취하던 이정빈(李廷彬)외교통상부장관은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무장관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내용은 “남북정상회담의 합의를 축하하고 이를 환영하고 지지하며, 성공적인 결실을 거두도록 잘 협조해 나가자”는 것. 94년 북한 핵위기 이후 미 국무장관이 장관의 관저로 직접 전화를 해온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남북정상회담 합의에 대한 미 일 중 러 등 주변 4대국의 반응은 환영 일색이다.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남북한의 직접대화는 미국이 오랫동안 옹호해 왔던 것으로 한반도 문제 해결의 근본적인 요소”라고 했고, 고노 요헤이(河野洋平)일본외상도 지지입장을 표명했다. 중국 러시아도 “남북 간의 고무적인 상황진전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전통적으로 주변 4강의 한반도정책 기조는 ‘현상유지(status quo)’였다. 어느 한 국가(세력)의 압도적인 영향력에 의해 한반도와 주변 4강의 ‘세력균형체제’에 어떤 급격한 변화가 오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현상유지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등 대량무기 개발을 억제하고 북한을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으로 복귀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런 목적 아래 추진된 것이 ‘페리보고서’로 집약되는 한 미 일 3국의 대북 포괄접근책이었다.

미국은 그 일환으로 북-미 회담을 가져왔다. 일본도 입장은 같았다. 일본은 더욱이 북한 미사일의 사정권 안에 놓여있어 더 예민하다. 일본이 지난해 말부터 수교협상을 통한 관계정상화를 조심스럽게 모색해 온 것도 이런 입장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과 러시아 역시 한반도의 안정화를 추구해 왔다. 양국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지지해온 것도 한반도의 현상유지를 깨뜨리지 않는 것이 자신들의 이익에도 부합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북한도 나름대로 개방과 국제화의 몸짓을 보였다. 지난해부터 주변 4강뿐만 아니라 프랑스 독일 영국 등 EU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특히 이탈리아와는 1월 외교관계를 맺었다. 이밖에 필리핀 호주와도 관계정상화 협상을 벌이는 중이다. 또 동남아국가연합(ASEAN) 국가들에 대해서도 수교의사를 타진 중이며 전통적 지지기반이었던 비동맹권과의 관계 재정립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전체적인 국제정치환경 속에서 남북이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했다. 이 합의는 ‘한반도와 주변 동북아의 현상유지’라는 4강의 이해관계와 더욱 맞아떨어지는 성격을 지닌다.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에 남북이 사실상 2개의 국가로 남아 분단체제가 더욱 고착화될지는 모르나 적어도 남북과 주변 4강의 이해관계는 평화공존과 공동번영이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다시 말해 4강이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반대할 이유를 당장은 찾기 힘들다.

그렇다고는 해도 남북정상회담이 곧바로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으로 직결된다고 보는 것은 아직 성급하다. 구체적인 현안들을 둘러싼 관련국들의 정책적 우선순위나 입장도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우선 한국과 미 일 양국의 북한에 대한 시각에는 간과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한국이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화해 협력에 주된 관심이 있다면, 미 일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억제가 더 급하다.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관계개선이 적절한 속도를 유지할 경우 북-미, 북-일 관계개선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미 일의 예상을 넘어서 급류를 탈 경우 한 미 일 공조체제에 균열이 올 개연성도 없지 않다. 또 북-미, 북-일관계가 북한 핵 및 미사일문제로 악화될 경우 남북관계가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미중 관계의 악화로 한반도를 놓고 미국 일본과 중국 러시아 간에 신(新)냉전구도가 생길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따라서 앞으로의 과제는 남북 모두가 주변 4강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있고 섬세하고 세련된 외교로 분단 반세기만에 얻은 기회를 잘 활용하는 것이다. 주변 4강이 남북 간 화해노력을 지지할 수 있도록 양측이 우선 화해와 공존에 관한 컨센서스를 이뤄야 함은 물론이고 불필요한 반목과 대립으로 주변 4강중 어느 하나라도 이같은 ‘안정화 체제’에서 일탈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긴요한 일이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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