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공천파문]李총재측 "주사위는 던져졌다"

  • 입력 2000년 2월 20일 20시 02분


‘금요일의 대학살’이라 불리는 한나라당 공천 이후 이회창(李會昌)총재측과 낙천중진의원들의 행보는 엄청나게 분주한 움직임을 보였다.

○…이회창총재는 20일 오전 공천 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명동성당 미사에 참석. 이총재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찾는 곳은 명동성당이나 아산 현충사. 측근들은 이총재가 공천 후유증을 정면돌파하기에 앞서 “각오를 다졌다”고 설명.

이총재의 최대 무기는 ‘공천개혁’과 ‘물갈이’ 여론. 이총재는 19일 “대세가 변화를 요구하는 만큼 어쩔 수 없다”고 측근들을 독려. 하지만 이같은 강경 대응 속에서도 “정치는 현실인데 한번에 너무 많은 것을 이루려 한 것 아니냐”는 우려의 소리도 적지 않은 실정.

또 ‘물갈이’에 치중한 나머지 대구 중구의 백승홍(白承弘)의원이나 부산 서구의 연청 간부 출신 이상열(李相烈)씨 등 뒷공론을 일으킬 인물들을 공천한 것은 문제라는 내부 지적도 대두.

그러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게 이총재측의 인식. 김윤환(金潤煥)고문 김덕룡(金德龍)부총재 이기택(李基澤)전부총재 등을 상대로 설득 노력을 하긴 하겠지만 결과에 관계없이 ‘나의 길을 가겠다’는 자세다.

○…그러면서도 이총재를 비롯한 당직자들은 반발을 보이고 있는 비주류 중진들을 설득하는 등 진화(鎭火)를 위해 부심하는 모습. 김광일(金光一)전대통령비서실장이 20일 오전 공천반납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부영(李富榮)원내총무 등은 당황해하며 19일 저녁 늦게까지 김전실장과 전화 접촉을 시도. 그러나 김전실장은 끝내 접촉을 거부한 뒤 탈당 기자회견을 강행.

○…부산 연제 지역구 공천에서 탈락된 이기택전부총재는 공천발표 다음날인 19일 오전 서울 서초동 김윤환고문의 자택을 방문, 대응책을 모색. 이전부총재는 힘을 합쳐 신당을 만들자고 제의했고 김고문도 원칙적으로 동의했지만 일단 분위기가 성숙될 때까지 기다려 보자고 언급. 김고문의 측근인 윤원중(尹源重)의원은 “신당창당 이외에 다른 길이 있겠느냐”고 언급.

김고문과 만난 이전부총재가 북아현동 자택으로 귀가하자 신상우(辛相佑)국회부의장 등이 북아현동을 방문, 이전부총재와 향후 대처방안을 논의.

<박제균·정연욱기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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