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공천발표]말로만 끝난 공천개혁

  • 입력 2000년 2월 17일 19시 40분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공천개혁’을 내걸고 시작된 민주당의 공천작업이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난 것 아니냐는 평이 나오자 민주당 관계자가 한 말이다.

원래 개혁이란 두가지 전제, 즉 ‘의지’와 ‘힘’이 수반되지 않을 경우 공염불로 끝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개혁에 실패했다는 것은 이 두가지 전제 모두거나 어느 한 쪽이 부족한데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다.

이번 민주당 공천과정에서 이러한 전제를 검증해볼 수 있는 대목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이유야 어떻든 대표적인 교체대상으로 지목된 김봉호(金琫鎬)국회부의장의 경우를 보면 원인은 자명해진다. ‘당 기여도’를 내세운 김부의장의 ‘기사회생극’으로 민주당은 호남의 대폭 물갈이를 수도권의 ‘신진인사 세몰이’로 연결시키려던 전략을 희생해야 했다.

전북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전 현직 의원이 공천된 것이나 수도권 현역의원 중 김상현(金相賢)의원과 일부 영입의원을 탈락시키는 데 그친 것도 이러한 막판 ‘역풍’의 산물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물론 권노갑(權魯甲)고문의 불출마선언이나 최재승(崔在昇) 윤철상(尹鐵相)의원, 이강래(李康來)전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장성민(張誠珉)전청와대상황실장 등 가신출신들을 배제한 것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 또 ‘386’세대를 8명 수도권에 배치한 것도 세대교체의 의지표현이란 점에서 의미부여를 할 만하다. 그러나 이 역시 김상현의원 등 ‘비주류 척결론’의 와중에 빛을 발하기 어렵게 됐다.

빼놓을 수 없는 또 한가지 문제는 ‘밀실 정실 공천’의 사례들이 공천 전체의 이미지를 얼룩지게 만들었다는 점. 김대통령은 공천과정에서 “공천심사위원회에 모든 것을 맡기겠다”고 공언했지만 실제 수도권 호남 등 핵심지역은 수뇌부의 조율에 의한 내천이나 실세들의 ‘막판 밀어넣기’로 공천자가 결정됨으로써 투명성에 흠집을 남겼다.

결국 이번 민주당의 공천은 정당의 구조적 민주화가 이뤄지지 않는 한 공천개혁은 요원한 과제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이동관기자> 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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