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80돌 기획]최서면원장 「2·8」새사료 발굴

입력 1999-02-07 20:01수정 2009-09-24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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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2월8일, 일본 제국주의 심장부인 도쿄(東京)의 조선YMCA회관. 유학생 4백여명이 조선청년독립단의 이름으로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을 선언했다. 유학생들은 이날 오전 독립선언서를 일본 정부 요인, 각국 대사, 언론사 등에 발송했으며 오후2시 YMCA회관에 모여 독립선언서와 결의문을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선언식이 끝날 무렵 유학생들은 진압하는 일제 경찰에 맞서 싸웠고 최팔용(崔八鏞) 윤창석(尹昌錫) 김도연(金度演) 이종근(李琮根) 이광수(李光洙) 송계백(宋繼白) 김철수(金喆壽) 최근우(崔謹愚) 백관수(白寬洙) 김상덕(金尙德) 서춘(徐椿) 등 유학생 대표 11명 중 10명이 경찰에 검거돼 옥고를 치렀다. 유학생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2월12일과 23일에도 독립 시위를 벌였다. 2·8독립선언은 한국 청년학도들이 제국주의의 심장부 한복판에서 대한독립의 당위성을 당당히 세계에 알린 역사적 사건이며 3·1독립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던 한국독립운동사의 쾌거다.》

2·8독립선언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동안 2·8독립선언은 도쿄(東京)의 한국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고 그 이상의 연구는 미진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2·8독립선언을 ‘유학생 중심의 투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국내외 독립운동 조직과의 긴밀한 연결 속에서 이뤄진 ‘민족적 거사’로 봐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끌고 있다. 2·8독립선언이 민족자결주의 등 국제 정세의 변화와 유학생들의 열렬한 투쟁정신에서 촉발됐을 뿐만 아니라 그 배후에는 중국 상하이(上海) 및 국내 독립운동 조직의 전폭적인 지원과 긴밀한 협조 아래 이뤄진 거족적인 움직임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것은 최서면(崔書勉)국제한국연구원장이 최근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에서 발굴한 사료와 조항래(趙恒來)평택대교수의 논문 ‘2·8독립선언의 현대사적 의의’. 여기서 주목할 만한 내용은 △중국 상하이 신한청년당의 장덕수(張德秀) 조소앙(趙素昻)파견 △미주지역 독립운동가 여운홍(呂運弘) 지용은(池鎔殷) 등의 간접참여 △국내에서의 2·8독립선언 자금 지원 등이다.

최원장이 발굴한 자료엔 ‘1919년 장덕수가 상하이 신한청년당의 지시로 도쿄에 잠입, 2월5일 시바(芝)공원에서 역시 신한청년당의 지시로 파견된 조소앙을 만나 2·8독립선언 자금으로 8백원을 건넸다. 장덕수는 거사일 이전에 요코하마(橫賓)에 들러 당시 중화신보 기자였던 조동우(趙東祐)에게도 독립운동 비밀자금을 맡겼다’는 내용이 기록돼있다.

최원장은 “이같은 기록으로 볼 때 2·8독립선언은 유학생 차원만의 거사가 아니라 국내외 독립운동조직의 연계와 공동 준비 속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2·8독립선언이 도쿄에서 거행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국내외 독립지사들은 첫 거사 장소를 도쿄로 정함으로써 독립투쟁에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려 했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교수도 2·8독립선언 80주년 기념 학술회의(6일 서울 종로2가 서울YMCA회관)에서 발표한 논문을 통해 “조소앙이 장덕수에 앞서 일본에 들어와 유학생들에게 항일투쟁정신을 고취하고 독립운동을 종용하고 있었고 미주에서 도쿄에 잠입한 여운홍 지용은 등도 유학생들의 궐기를 도와 2·8독립선언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밝혔다. 또한 “2·8독립선언 대표 11명 중 한사람인 송계백(宋繼白)은 거사에 앞서 독립선언문을 지니고 국내에 들어와 2·8 준비상황을 알린 뒤 정노식(鄭魯湜)이라는 인물로부터 땅을 판 돈을 거사자금으로 받아 일본으로 돌아갔다. 유학생 김석황(金錫璜·광복후 김구선생 환영준비위원장)도 국내에서 거사 자금 3백원을 마련해 대표 11인 중의 또다른 한사람인 춘원 이광수(春園 李光洙)에게 전달했다”고 설명, 2·8독립선언이 독립운동 단체의 다양한 지원과 조직적인 움직임을 통해 이루어진 것임을 입증했다. 조교수는 “국권 상실 이후 국내외에서 활동해오던 독립운동 세력의 역량이 결집된 첫번째 결과물이 2·8독립선언이므로 유학생들만의 독립운동으로 국한시켜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광표기자·도쿄〓윤상삼특파원〉yoon33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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