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왜 이러나?/눈치만 보는 의원들]

  • 입력 1999년 1월 8일 19시 29분


《우리정치가 왜 이런가. 여야가 연 사흘째 국회에서 격돌하는 모습을 지켜본 국민의 입에서는 이런 자탄이 저절로 새어나왔다. 정권교체후 정치권에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대립과 반목이 계속됐다. 원인은 여러 시각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정권교체의 후유증이라는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다. 여당은 미숙한 운영으로 정국안정을 이루지 못했고 야당은 정권을 잃은 상실감에 빠져 ‘건전야당’으로 거듭나는 데 실패했다. 거시적으로는 ‘여소야대’에서 ‘여대야소’로의 전환과 그 과정이 여야를 자극했다. 또 ‘3김(金)정치’의 종식은 정치권의 리더십공백을 불러왔다. 여야의원들의 16대총선을 앞둔 공천노이로제와 집단대결의식도 한몫했다. 난파직전에 처한 정치현실의 원인을 진단해본다.》

정치가 제기능을 못하고 있는데는 여야의원들의 정체성(正體性) 위기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이는 정권교체에 따른 여야간 위상정립이 제대로 되지 못한데다 1년여 앞으로 다가온 16대총선 공천 등을 의식해 당지도부에 대한 맹목적 추종으로 의원들이 헌법기관으로서 독자적인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회의 의원들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눈치를 보느라 ‘소신’있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야당시절 건전한 비판이나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했던 풍토는 차츰 자취를 감추고 당지도부의 결정에 비판없이 추종하는 모습이 눈에 많이 띈다.

당지도부 역시 ‘튀는’ 의원들을 제재하거나 경고하기 일쑤다.

7일 야당의 봉쇄를 뚫고 국회 본회의장에서 경제청문회를 위한 국정조사계획서 등을 처리하기에 앞서 상당수 의원이 개인적으로는 변칙처리 반대의사를 피력했으나 막상 의원총회가 열리자 김상현(金相賢)의원 등 일부만이 이를 거론했다.

오히려 재야 및 교수출신 일부 의원들은 한나라당과의 몸싸움이나 법안 변칙처리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였다.

자민련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충청권 의원들은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에게 충성하는 것이 차기공천에서 살 길이라며 내각제 개헌문제에 맹종하다시피하고 있다. 반면 비충청권 의원들은 국민회의와 내각제 및 16대 연합공천을 연계협상해야 한다며 내각제 개헌에 무게를 두지 않는 등 다른 태도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경우 정권교체후 방향감을 상실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사사건건 정부여당에 반대하면서도 여당의 법안 변칙처리 등에 맞서 정작 투쟁이 필요한 때에는 몸싸움을 피하는 등 이중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의원들의 행태도 사분오열이다. 영남권 의원들은 지역의 ‘반김대중정서’에다 이회창(李會昌)총재의 공천을 의식해 대여투쟁에 앞장서고 있으나 다른 지역 의원들은 이총재 간판으로는 당선보장이 없다며 수수방관하고 있다.

일부 중진들은 공공연하게 이총재와 정치를 함께 할 수 없다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엉거주춤한 모습이다.

정치상황이 이렇다보니 의원들의 정체성은 사라진지 오래다.

〈양기대기자〉k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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