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 국무회의 표정]「열린 國政」장관들 토론 활발

  • 입력 1998년 3월 11일 06시 39분


국무회의가 정부정책을 심의하는 헌법상 최고기구로서 제 위상을 되찾았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0일 서울 정부세종로청사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국무회의가 국사(國事)의 중심”이라고 선언했다.

김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국사를 다른 곳이나 청와대비서관, 대통령측근이 좌지우지하는 경우는 다시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관례에 비춰 파격적인 발언이었으나 사실은 국무회의의 정상화였다.

김대통령은 회의운영 스타일도 바꿨다. 기계적으로 안건을 상정하고 통과시키는 ‘방망이 치는 국무회의’에서 탈피하고 주요현안에 대한 국무위원들의 자유토론을 유도했다.

이날 토론주제도 김대통령이 정했다. 물가 실업 대북쌀지원 등 세가지였다. 김대통령은 주무장관이 아닌 국무위원들도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하라고 주문했다. 이는 주요 국정현안에 대한 인식과 책임을 전 국무위원이 공유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물가와 실업문제는 다음 국무회의에서 보충토론을 하기로 했다.

한 참석자는 “토론이 활성화되면 부처이기주의를 상당부분 없앨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한 참석자는 “책임회피 풍토를 개선하고 국무회의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 역시 자연스럽게 경제회복과 개혁에 초점이 모아졌다. 김대통령은 “개혁의 진도가 늦고 후퇴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어 한국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관망하는 외국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대통령은 “특히 정치불안정이 대외신인도 회복의 장애가 되고 있다”며 “정치가 경색되더라도 행정부는 흔들리지 말고 개혁에 앞장서 달라”고 당부했다.

이규성(李揆成)재정경제부장관은 “대외신인도 회복을 위해 금융기관과 기업의 구조조정이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며 “시기와 폭에 대한 목표를 정해 강력히 밀고 나가겠다”고 보고했다. 그는 이어 “외국인의 토지투자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관계기관과 협의하겠다”며 “외국에서 유입되는 핫머니를 계속 머물게 해야 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안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기호(李起浩)노동부장관은 “요즘은 매일 1만명씩 실업자가 늘어나고 있다”며 “3월중 실업자 수가 1백5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고 보고했다.

이장관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 공기업이 금융시장에서 공채발행 등을 통해 공공사업을 확대하는 방안을 강구했으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강인덕(康仁德)통일부장관은 “북한의 식량난은 과장된 측면이 있는 것 같다”며 “북한이 (식량보다) 비료를 먼저 달라고 하는데 비료를 주려면 4월 파종기에 맞춰 빨리 줘야 한다”고 보고했다.

1시간 가량 진행된 토론 도중 김대통령은 딱 한번 회의진행을 위한 발언을 했을 뿐 주로 경청했다. 국무위원들도 처음에는 다소 어색해 했으나 곧 진지하게 토론에 참여했다.

이재경부장관이 외환사정에 대해 비교적 낙관론을 펴자 전윤철(田允喆)공정거래위원장이 “적대적 기업인수합병(M&A)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바뀜으로써 대외신인도가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며 반론을 펴기도 했다.

한편 김성훈(金成勳)농림부장관이 농산물 직거래를 위한 소비자협동조합 설립과 생활협동조합법 제정의 필요성을 제기하자 이재경부장관이 즉석에서 “실무협조를 통해 빨리 제정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정리발언을 통해 “위기는 기회”라며 회의를 마쳤다.

〈임채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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