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風의혹」철저히 규명하라

  • 입력 1998년 3월 6일 20시 11분


지난해 12·18대통령선거때 김대중(金大中)후보를 낙선시킬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북풍(北風)공작’ 문건이 폭로돼 나라가 떠들썩하다. 문건내용을 보면 북풍공작을 음모하고 실천하기 위한 회의를 안기부 고위간부들이 직접 주재한 것으로 돼 있다. 기밀사항인 국가정보기관의 조직편제와 간부공작원 이름이 적힌 이 문건은 내부자가 작성했을 것으로 추정돼 더욱 충격적이다.

문건에 따르면 공작시나리오는 선거전 상황에 맞추어 1단계부터 3단계까지 매우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짜여졌다. 안기부 대공실장이 검찰기자실에 가 발표한 것이나 안기부 간부출신인 한나라당 의원이 김후보의 색깔시비를 편 것 등이 모두 공작시나리오에 포함돼 있다.

직무특성상 신원이 베일에 가려 있어야 할 안기부 대공실장이 보도진 앞에 선 것부터가 이례적이라는 지적도 그 당시 나왔었다.

사실이라면 예삿일이 아니다. 국가정보기관이 대통령선거전을 공작대상으로 삼았다는 문건내용은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 공작의 실체와 의혹이 제기된 안기부간부 및 정치인의 배후연루 여부를 엄정히 가려내야 한다.

정보를 독점한 국가안보기관의 정치개입을 차단하고 선거때마다 등장했던 색깔시비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서도 그렇다. 검찰관계자는 수사가 안기부 상층부까지 확대될 경우 파장이 너무 커질 것을 우려해 안기부 자체조사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한 발 물러서는 듯한 인상이지만 그래서는 안된다.

정치권 인사가 연루돼 있다는 것 등 어떤 이유도 수사에서 고려요인이 될 수 없다. 안기부의 정치공작 의혹을 규명하는 일은 왜곡된 정치사를 바로잡고 앞으로의 재발방지를 위해서도 피해갈 수 없다.

다만 수사는 엄정하게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그것이 추호라도 정치보복성으로 진행돼서는 안된다. 심지어 문민정부 아래에서도 권력을 남용하고 법을 어겨가며 국가기관을 정치공작의 도구로 이용한 사람들은 엄벌해 마땅하지만 그것이 표적수사나 괘씸죄 징벌로 비쳐지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 또 이 관계 수사를 정계개편에 이용하려 하는 어떠한 시도가 있어서도 안된다.

이번 사건의 여파로 안기부는 조직과 인사, 그 기능의 대대적 개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국내정치에 초연하고 21세기의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견인차로 다시 태어나는 안기부를 보고싶은 것이 국민적 희망이다.

안기부의 본래 임무는 국내사찰이나 정치공작이 아니다. 국제시장의 경제통상 동향을 파악하는 국가정보기관이 필수적임은 이번 국제통화기금(IMF)사태에서도 입증됐다. 안기부가 작지만 정예화된 정치적 중립의 국가정보기관상을 확립하도록 환골탈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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