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30일 부실금융기관에 대한 정리해고제를 우선 도입키로 하고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 관련법안을 처리키로 합의한 것은 다분히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금융계를 의식한 조치다.
경제개혁 의지를 담은 한국 정치권의 합의를 보여줌으로써 IMF협약의 성실한 이행 등 국제금융사회의 신뢰를 쌓아 이를 바탕으로 대한(對韓) 금융지원을 앞당기려는 긴급조치인 셈이다.
이날 원내총무 정책위의장 연석회담을 요청한 것은 비상경제대책위의 김대중(金大中)당선자측. 외환위기와 기업부도위기 등 경제대책 전반에 대한 실질적인 「경제내각」 역할을 하고 있는 비대위가 앞으로의 활동반경을 넓히기 위해 정치권의 약속을 받아낸 것이다. 이번 임시국회중 이 문제를 관철하지 못한 데 대해 사후 처리를 보장받은 셈이다. IMF와의 추가협약에서 한국정부가 약속한 부실금융기관의 정리시한은 2월말까지다. 따라서 금융계 정리해고문제를 사전에 못박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비대위는 국제금융계가 선결사항으로 요구하는 금융계 구조개선에 대한 정부와 국회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했음직하다.
이날 작성된 합의문은 곧바로 IMF와 세계 민간은행 등에 보내지고 한국의 신인도 평가를 위한 핵심자료로 활용된다. 비대위는 이번 합의문을 포함, 경제위기 타개를 위한 개혁 프로그램을 담은 이른바 「한국경제 리포트」를 들고 해외 민간금융기관을 찾아가 「신디케이트 론(협조융자)」을 요청하게 된다.
이와 함께 이번 합의는 산업계 전반에 대한 정리해고제의 본격 도입을 알리는 「신호탄」의 의미가 있다.
국민회의 박상천(朴相千)원내총무는 『정리해고에 대한 노사정 합의만 이끌어내면 곧바로 노동관계법의 정리해고 2년 유예조항을 삭제, 산업계 전반에 정리해고를 확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나라당도 이런 입장에 동의하고 있다. 한나라당 금융대책특위는 이날 정리해고제 도입을 위해 정부가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마련,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하지만 노동계의 거센 반발로 지금으로서는 3자간 「사회적 합의」 가능성을 점치기 어려운 형편.
따라서 이번 3당간 합의는 노사정 3자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부실금융기관에 우선 정리해고를 도입한다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확보했다는 의미도 있다.
한편 이날 여야는 내년 2월 임시국회 회기중 정부조직법 개정안과 추경예산안 등 「작은 정부」 약속 실천을 위한 의안도 함께 처리키로 했다. 취임 이전인 2월초 정부조직의 축소와 감액 추경예산을 마무리짓겠다는 김당선자의 의지가 담긴 것이다.
〈이철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