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정치자금발언]『야당에 돈 주고 소문내도 상관없다』

  • 입력 1997년 12월 24일 20시 13분


야당 총재의 발언이 아니다. 두달 뒤면 대통령에 취임할 김대중(金大中)당선자의 말이다. 김당선자는 24일 경제6단체장과 만나 『법에 의해 여야 정당에 공정하게 정치자금을 줘야 한다』며 『여당만 주고 야당에 안줘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경제계 인사들은 순간 의아한 표정이었다. 야당총재도 아닌 집권에 성공한 대통령 당선자의 입을 통해 듣기 어려운 예상외의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김당선자는 『야당도 국가를 위해 필요한 기관』이라며 『법에 맞게 여야에 돈을 줘 정치가 부패의 길로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당선자는 이어 『김영삼(金泳三)정권하에서 지정기탁금 1천4백억원이 여당에 들어갔는데 야당은 1천4백원도 못받았다』며 『정말 그때는 속이 상했다』고 야당시절 재계의 홀대를 회고하기도 했다. 김당선자는 야당으로 위치가 바뀐 한나라당과 국민신당을 직접 거론하며 『두 당에 돈을 주고 돈줬다고 소리치고 다녀도 관계없다』고 말했다. 경제계 인사들은 그제서야 긴장을 풀었다. 정치자금 문제를 포함해 20여분간에 걸친 김당선자의 당부가 끝난 뒤 최종현(崔鍾賢)전경련회장은 『정말 속시원한 얘기를 들었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김당선자는 지금까지 정치를 해오는 동안 재계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 적이 거의 없었다. 87년 92년 대선 때도 재계는 김당선자가 넘기에는 너무도 벽이 두꺼운 「비토세력」중 하나였다. 재계쪽도 선거때면 김당선자에게 일부 「보험금」을 줬지만 말그대로 「보험금」에 불과했다. 당선가능성이 어느때보다 높았던 이번 대선에서 김당선자는 몇몇 대기업으로부터 선거자금 지원을 은밀히 제의받았지만 합법적인 후원금을 내도록 유도했다는 후문이다. 김당선자의 이날 발언은 「정치자금〓여당독식」의 등식이 성립돼온 우리 정치의 불공정 관행을 타파하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진다. 또 여기에는 재계의 지원 없이 집권에 성공한 김당선자 나름의 자신감도 배어있다고 볼 수 있다. 국민회의의 한 당직자는 『지금이야 반신반의하겠지만 조금만 지나면 김당선자의 발언이 진심임을 알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당선자의 이같은 발언이 실제로 우리 정치자금의 관행을 바꿀 지는 미지수다. 정치자금은 언제나 「권력」쪽으로 몰려왔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겨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당선자가 이날 국민신당 이인제(李仁濟)고문을 만나 『기업이 야당을 도울 수 있는 길을 찾아보겠다』고 약속함으로써 김당선자의 이같은 발언에는 「진심」이 들어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만약 이같은 관행이 정착될 경우 정치자금에서 촉발된 여야간의 불필요한 마찰이나 재계의 정치권 줄대기 등의 구습은 어느정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윤영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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