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킹메이커」들 근황]쓰라린 가슴 안고…

  • 입력 1997년 12월 24일 20시 13분


대선 패배로 하루아침에 처지가 바뀐 대표적인 사람들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명예총재의 측근들을 꼽을 수 있다. 선거전에는 「실세」였으나 선거후에는 인책론의 도마위에 오르는 신세가 됐다. 그중에서도 「측근 7인방」은 남들보다 오래 「이회창대통령 만들기」에 열심이었던 만큼 충격과 허탈감에서 벗어나는 것도 그만큼 힘들다. 이들중 하순봉(河舜鳳)의원은 지역구인 진주에서 선거운동에 전력을 다하다 귀경(歸京)하자마자 여의도 성모병원에 입원했다. 과로와 정신적 충격이 겹쳤기 때문. 이제는 통원치료를 받고 있지만 당분간 휴식을 취하면서 생각을 정리할 예정이다. 당의 대선기획본부장을 맡아 선거전략을 총지휘했던 서상목(徐相穆)의원은 패배의 책임을 절감하면서 패인(敗因)을 분석하고 있다. 신한국당 기조위원장이었던 김영일(金榮馹)의원은 한나라당 기조위원장이 임명될 때까지 당무를 보며 패배의 쓰라림을 달래고 있다. 조직본부장을 맡았던 백남치(白南治)의원은 패배의 허탈감을 털어내기 위해 경제 관련 서적을 잡고 있다. 변정일(邊精一)의원은 24일 자신의 지역구(서귀포―남제주)인 제주도로 내려갔고 박성범(朴成範)의원은 가족들과 서울근교에 머물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황우려(黃祐呂)의원은 집에서 두문불출하다시피 하며 밀린 잠을 실컷 잤다고 한다. 이명예총재의 측근들은 나름대로 모임을 가지면서 자신들의 거취 등을 고심하고 있지만 「5년후를 노리며 이회창을 밀어야 한다」는 소신파와 향후 정국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관망파로 갈리는 느낌이다. 〈박제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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