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희상/金당선자의 「실수」

  • 입력 1997년 12월 23일 20시 25분


전국의 약국에선 두통약과 소화제가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당선자도 밤잠을 못 이룬다고 한다. 만신창이가 된 나라를 어떻게 끌고 가야 할지 대안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전국의 가가호호에서도 잠 못이루는 밤이 이어진다. 새 지도자는 물론이고 온 국민의 잠못 이루는 밤이 하루빨리 사라지려면 우선 눈앞의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부도(모라토리엄)를 막아야 한다. 세계적인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가 한국이 발행하는 채권을 정크본드(위험도가 극히 높은 투기성 채권)로 분류했다. 삼성그룹 계열사의 한 부장은 『물이 가득 담긴 세숫대야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것 같다』고 고통스러운 심정을 전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들도, 은행원들도, 다른 직장인들도 같은 생각이며 그것이 현실이다. 재정경제원은 뒤늦게 대통령 당선자에게 「외환위기의 진실」을 말해줬다고 한다. 문제는 김당선자가 『알고 봤더니 국가부도 위기가 눈앞에 있더라』고 했다는 말이 직격탄처럼 금융시장에 전달된 데 있다. 금융기관을 담당하는 기자들은 항상 특정기업의 1차 부도를 기사로 다룰 것이냐를 놓고 고민한다. 남보다 앞서서 알리고 싶은 욕심과 「○○기업이 부도위기」라는 내용이 나가면 해당 기업은 거의 어김없이 최종부도가 난다는 현실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기업이든 국가든 빌린 돈을 제때에 못갚으면 부도가 난다. 그렇더라도 기업대표가 앞에 나서서 『우리는 부도위기에 처했다』고 공언하는 일은 없다. 김당선자가 19일 당선후 첫 기자회견에서 통역을 찾는 것을 보고 역시 대권은 대책(大責)과 표리관계임을 실감했다. 「우리는 국가부도 위기」라는 말을 여과없이 해버리는 것이 정책의 투명성을 입증하는 것이 될 수는 없다. 당선자와 그 주변에선 정말로 말을 아껴야 할 때다.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서 정권을 넘겨받게 되는지 국민이 더 잘 알고 있다. 그땐 정말 아찔했다고 나중에 회고할 망정 지금은 승객들을 안심시키려고 노력하는 운전자여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윤희상(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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