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에세이]오자복/개성상인의 애국심

  • 입력 1997년 11월 10일 20시 02분


세월은 정말 유수(流水)와도 같아 그토록 사랑하는 내 고향 개성을 등지고 내려온지 어언 반백년. 지척에 두고도 먼 발치에서만 희미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고향땅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은 날로 커지고 있다. 개성은 자랑거리가 너무도 많은 곳이다. 풍수지리를 빌리자면 개성은 북쪽의 송악산을 진산(鎭山)으로 좌우에 청룡 백호에 해당하는 산을 거느리고 남쪽으로는 한강하류로 이어지는 평야를 끼고 있어 이른바 부산대수(負山帶水)의 지세를 완벽히 갖춘 곳이다. ▼ 日帝도 정신 못꺾어 ▼ 또 서울에서 가까운데다 사통팔달의 교통망을 갖고 있고 환경오염도 거의 없어 장차 통일한국의 수도로 최적지라 할 수 있다. 만월대 선죽교 등 명승고적과 인삼도 유명하지만 개성에서 개량한 배추로 만든 보쌈김치와 송도의 스타사과, 꿀물이 듬뿍 담긴 배의 맛과 향기를 수십년이 지났건만 결코 잊을 수 없다. 최근 우리나라엔 시장개방에 따라 수입물품이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는 가운데 일부 무분별한 계층의 외제품 선호와 사치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일제시대 개성상인과 시민들이 보여준 애국심은 큰 귀감이 된다 하겠다. ▼ 日人상점 4곳 불과 ▼ 당시 일본은 인구 10만명에 가까운 개성의 경제권을 장악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으나 일제 강점기간을 통틀어 그곳에서 일본인이 운영했던 가게라고는 어물상점과 서점, 잡화상점 등 모두 4군데에 불과했다. 그나마 이들 가게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소수의 일본인 경찰과 시청직원 교원들이었을 뿐 주체의식이 강한 개성시민들은 일본 가게를 외면했었다. 이같은 높은 시민정신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해선 아직은 극복해야 할 장애가 많다. 그러나 통일의 날을 정확히 기약할 수는 없어도 우리가 인내와 끈기로 통일을 대비한다면 그 날은 빠른 시일 안에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만추의 계절에 내 마음은 그립고도 자랑스러운 고향 개성 땅으로 길을 떠난다. 오자복(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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