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정일시대 긴급대담]정세현-오코노기 마사오

  • 입력 1997년 10월 11일 19시 59분


《북한 김정일(金正日)은 10일 김일성(金日成)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했다. 이는 그가 당총비서에 추대된 후 가진 첫 공식행사였으며 이날부터 북한의 관영방송들은 그를 총비서로 호칭하기 시작했다. 본보는 김정일 총비서시대에 북한의 정치 경제와 대남대외 정책들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조감하는 3회의 시리즈를 게재한데 이어 긴급 한일(韓日)전문가대담을 마련한다.》 [대담=정세현(통일원 민족통일연구원장) 오코노기 마사오(일본게이오대교수)] ▼정세현〓김정일(金正日)의 당총비서직 승계는 예견된 것이지만 상당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봅니다. 승계 지연으로 인한 내부적 문제를 정리했고 외부로부터의 의혹의 눈초리도 잠재웠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당총비서 취임은 북한이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방향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징표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오코노기 마사오〓당총비서 승계과정에서 당대표자회의와 당중앙위전원회의를 열었는지 의문시되고 있습니다. 아마 정상적인 절차를 밟으려면 연설이나 활동보고를 통해 경제적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었기 때문에 변칙이 등장한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정〓「화려한 대관식」을 하려면 뭔가 새로운 경제계획이나 대외정책을 발표해야 하는데 그게 없어 「간소한 승계」를 했다는데 동의합니다. 이는 또한 김정일이 실무형이고 실용주의자적 성향을 갖고 있다는 것과도 무관치 않은 것 같습니다. ▼오코노기〓김정일이 이번에 당총비서자리에 오른 것은 외교적 이익도 고려한 것인 듯 합니다. 실제로 북한은 최고지도자가 없어서 적지않은 불이익을 받아왔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의 장쩌민(江澤民)주석과 리펑(李鵬)총리가 한국엔 왔지만 북한에 가지는 않았습니다. 이와 함께 남한의 새 정부 출범이전에 권력을 승계하는 것이 남북관계의 이니셔티브(주도권)를 잡는데 유리하다는 판단도 했음직합니다. ▼정〓그런 고려가 있었을 겁니다. 북한이 「현 정권과는 대화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다음 정권과는 일정부분 대화하는 모양새를 갖춰야 하기 때문에 먼저 자신의 체제를 갖춘 뒤 대선을 지켜보면서 모종의 대남제의나 조치를 구상해 보겠다는 의도도 있었을 것입니다. ▼오코노기〓김정일의 국가주석직 승계는 내년 9월경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올해내 취임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그렇게 하려고 했으면 이번에 변칙적으로 당총비서에 취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정〓나는 조금 다르게 보는데요. 김정일이 내년 9월까지 기다릴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당총비서 승계때 처럼 금년내에 도단위 최고인민회의에서부터 추대형식으로 슬그머니 국가주석직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대남 대외정책을 펴는데도 국가주석직은 꼭 필요할 것입니다. ▼오코노기〓주석 취임이 언제냐 하는 것보다는 무엇을 제시할 것이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당총비서 취임때 특별한 것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석직 승계는 더 중요할 수도 있지요. 승계시기를 내년으로 보는 이유는 새로운 경제적 비전을 제시하려면 1년 정도 준비가 더 필요할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정〓일부에서는 김정일이 헌법을 고쳐 국가주석직을 폐지하고 내각총리가 행정을 통괄하는 72년이전의 성(省)체제로 가는게 아니냐는 견해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헌법까지 고쳐가면서 그러리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오코노기〓북한이 중시하는 「지도자론」 「수령론」 「사회정치생명체론」 등으로 볼 때도 주석직과 당총비서직을 분리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어려울 것입니다. ▼정〓김정일의 향후 통치이념과 정책방향을 보면 우선 김정일은 유훈통치의 외투를 벗어버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경제적 측면에서는 「제한된 개방」이나마 개방쪽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북한이 최근 잘사는 자본주의 나라인 호주와 사회주의경제체제에서 시장경제체제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헝가리에 경제연수생을 보내고 있는 것도 개방문제에 대한 김정일의 판단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코노기〓북한의 위기는 본질적으로 정치적 위기가 아니라 경제적 위기입니다. 앞으로 2∼3년 동안 경제재건의 기반을 마련하지 못하면 정치적 불안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북한은 국내적으로 경제재건을 위한 자본을 마련하기 힘들기 때문에 밖에서 이를 들여오려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점에서 북한으로서는 일본 한국과의 관계개선이 중요할 것입니다. 사실 이런 경제전략은 김일성말기에 이미 마련된 것입니다. ▼정〓김일성이 과거 남북정상회담에 합의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 였을 겁니다. 그러나 북한이 개방의 길로 들어서려면 대미 대일관계를 개선해야 하고 그러려면 필연적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북한은 북―일수교시 일본으로부터 막대한 배상금을 받을 수도 있지만 한국의 양해없이는 어려울 것입니다. ▼오코노기〓동의합니다. 모든 문제가 남북관계와 얽혀 있습니다. 북한이 원하는 대규모 식량지원은 물론 북―미관계개선, 북―일국교정상화는 남북관계가 개선돼야 가능할 것입니다. 남한의 새 정부가 출범하면 이를 위한 대화와 접촉이 활발해질 것이고 그 고비는 내년 가을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때쯤이면 남북정상회담도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정〓김정일총비서시대가 개막하면서 남북정상회담의 성사여부가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김정일은 곧바로 정상회담에 나섰다가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할 경우 자신에 대한 「신비주의」가 사라질 것을 우려할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우선 정상회담보다는 총리급회담을 시도하려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오코노기〓김정일 개인의 정치력과 리더십에 대해 의문도 많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치적으로 유능한 인물입니다. 그는 20년동안 「제왕교육」을 받았고 정치적으로 살아남아 후계자가 되는데 성공했습니다. 또한 김일성사후 대내외적으로 어려웠던 3년여를 버텨왔습니다. 정치력이 없는 인물이었으면 중도탈락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정〓김정일이 성질이 급하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이는 다른면으로는 결단력과 추진력이 있다는 것으로 통할 수도 있지요. 그에게 정치력이 있다고 보고 대북 통일정책을 펴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코노기〓그렇습니다. 이제는 김정일을 협상상대로 인정한 후에 대북정책을 어떤 방향으로 유도해 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정〓김정일이 대외활동을 기피하는 이유에 대한 루머도 많습니다. 그것은 「신비주의」를 이용해 김일성에 비해 약한 카리스마를 만들어 보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오쩌둥(毛澤東)이 그랬듯이 막후에서 조정하는 스타일을 유지해야 카리스마를 보태 정치안정화를 기할 수 있고 외부로부터도 관심을 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코노기〓같은 생각입니다. 그와 함께 김정일이 정치안정화를 위해 「전통적 지배체제」로 회귀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북한이 내세우는 김정일의 「인덕정치」 「광폭정치」 등은 유교적 가치관을 이용한 것입니다. ▼정〓「북한내에 김정일에 대한 도전세력이 있다, 강경파와 온건파의 대립과 당과 군간 알력이 있다」는 등의 시각도 있습니다. 그러나 김정일 앞에서 정책노선을 둘러싸고 강온파가 대립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봅니다. 황장엽(黃長燁)씨도 말했듯이 그가 지시하면 그 아래서는 구체적인 정책과 실천계획을 세우는 일을 할 뿐입니다. 〈정리〓이동관·문 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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