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신한국당 의원 및 원외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는 당초 예상보다 훨씬 뜨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비주류측이 「후보교체론」을 입밖에 내지 않을 것이란 예상을 깨고 회의 초반부터 후보교체론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이날 회의에 앞서 이회창(李會昌)대표는 『오늘 이 자리에서는 혁대를 풀고 마음껏 얘기하자』며 『이 자리가 당을 구하는 구국의 한 순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강삼재(姜三載)사무총장은 『여러분이 회의를 끝내자고 할 때까지 하겠다』며 「포용력」을 보였다.
그러나 비주류측은 회의 벽두부터 이대표 아들들의 병역문제를 집중 거론하며 이대표의 「후보결격」을 문제삼았다. 이인제(李仁濟)경기지사측의 유성환(兪成煥·대구 중구)위원장은 『대구 지역에서는 젊은이들이 술을 마실 때 「내 아들은 맘대로, 남의 자식은 법대로」를 외치며 건배를 한다. 아무리 국민이 이대표를 지지한다 해도 60만 군인이 이대표에게 회의를 가지면 국가를 제대로 경영할 수 없다』며 후보사퇴를 촉구했다.
구체적으로 「후보교체」라는 말이 나오자 이대표측 서상목(徐相穆)의원 등이 불쾌한 표정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등 분위기가 한때 경색되기도 했다.
○…주류측과 비주류측은 이대표의 지지도 하락 원인 진단에서부터 인식의 차이를 보였다. 주류측은 「경선패배후보들의 비협조」를 주장한 반면 비주류측은 「병역문제」때문이라고 팽팽히 맞섰다.
이대표는 자신에 대한 비판발언이 나올 때마다 일일이 메모를 해가며 경청했으며 가끔 두 눈을 지그시 감기도 했다.
이날 회의는 오전 10시반경 이대표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해 오전 11시경부터 자유발언에 들어가 점심식사 전까지만 무려 7명이 발언했으며 회의장 밖으로 고성이 터져나오는 등 열띤 분위기였다.
참석자들은 오후 1시경 자리를 뜨지 않은 채 당에서 준비한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해결하면서 마라톤회의를 계속했다. 다음은 참석자들의 발언요지.
▼이재오(李在五)의원〓우리 당의 정권재창출이 불투명하다. 대표부터 먼저 도덕성 개혁성 정치력 포용력 대중성 등 다섯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추석후 대선을 90일 남겨놓고도 정권재창출이 불투명한 상태가 지속된다면 당과 나라를 위한 결단의 자리가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
▼이원형(李源炯)위원장〓경선은 당원들의 주권행위이며 따라서 우리 당내에서는 법적구속력이 있다. 인기도는 시기에 따라 오르내릴 수 있는 문제다. 일시적인 지지도에 따라 전당대회 결과를 바꾸자는 것은 비민주적이고 비도덕적인 일이다.
▼이환의(李桓儀)위원장〓이대표도 TV토론에서처럼 부끄러움이 있니 없니 그런 식의 얘기를 해서는 안된다.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말하면 된다. 동서고금의 전사(戰史)에서 적전에 말을 바꿔타는 일이 있는가.
▼백승홍(白承弘)의원〓경선이 끝난 후 많은 대구시민들은 「지역패권」 「지역할거」를 극복했다며 격려전화를 걸어왔다. 후보교체는 있을 수 없다. 후보가 교체되는 순간 신한국당의 당기가 내려질 것이다.
▼김학원(金學元)의원〓여론조사에 따르면 인기도 하락원인 중 75%가 이대표 개인문제 때문이고 23%가 경선패배후보들의 비협조 때문이라고 한다. 정권재창출이 불투명하다면 후보를 교체할 수밖에 없다. 추석이 지나도 안되면 다른 대책을 심사숙고해야 한다.
▼박희태(朴熺太)의원〓이대표 스스로가 아들들의 병역문제를 흠이라고 인정,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흠을 갖고 당선된다면 국민에게 감사하고 국민을 두려워하게 돼 오히려 득이 될 수 있다.
▼박태권(朴泰權)위원장〓이대표측은 경선승리를 대선승리로 착각했다. 이대표가 먼저 낙선자를 찾아 위로했어야 했다. 우리가 단합해서 노력해도 안된다면 야당을 이길 수 있는 후보문제를 다시 논의해야 한다.
▼오장섭(吳長燮)의원〓경선 이후 과연 이대표를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 자성해야 한다. 지금부터 시작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강성재(姜聲才)의원〓민심은 변한다. 그러나 병역문제는 다른 것 같다. 경선승복이라는 명분도 중요하지만 더 큰 명분은 정권재창출이다. 일단 이대표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나서 10월초에 다시 논의해보자.
〈박제균·정연욱·김정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