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급한 식량난에 가려 뉴스의 조명을 덜 받고 있기는 하지만 북한 주민들이 의약품 부족으로 겪는 고통은 차마 믿기 어려울 지경이다. 북한을 자주 방문하는 중국 조선족 의사에 따르면 병원에 마취제가 없어 응급을 요하는 수술환자가 생겨도 수술을 못하고 방치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국제적십자사연맹은 지난 6월초 발표한 보고서에서 북한의 병의원 가동률이 7%에 지나지 않고 대부분의 병의원에 백신이나 항생제는 물론 기초적인 소독약도 없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형편이 이러함에도 북한은 80년 제정한 인민보건법에서 「가장 선진적인 인민보건제도가 마련돼 병치료에 대한 걱정을 모르고 건강하게 오래 살려는 노인들의 세기적 염원이 빛나게 실현됐다」고 허풍을 떨었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아파도 치료조차 못받는 인민들이 목불인견으로 죽어가고 있는데도 나라가 굴러가는 것이 기적같기만 하다
▼미국 코네티컷주에 있는 민간구호단체 아메리케어가 다음주 초 항공기에 2천3백만달러어치의 의약품을 싣고 평양으로 떠난다. 미국 민간 항공기로서는 한국전쟁 발발 1년 전인 49년 북한 영공진입이 끊긴 이후 48년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이 비행기에는 국제민간 구호단체들을 통해 수집한 항생제 등 응급치료용 약품이 실리고 의사와 간호사들도 동승한다. 미국 비행기라면 B29나 기억하고 있을 북한 주민들이 아메리케어의 긴급 의약품 수송 항공기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을지도 궁금하다
▼북한이 94년 영공개방을 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항로협의가 지지부진했으나 오는 10월 남북 당국자들이 태국 방콕에서 만나 한국과 미국 항공기의 북한 영공통과를 위한 본격적인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육로 해로와 함께 하늘의 길까지 열려 북한 주민들이 고통을 덜고 얼어붙은 체제가 서서히 녹아내리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