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배인준/기아사태의 해법

  • 입력 1997년 7월 28일 20시 05분


지난 1월 한보그룹 부도 후 여론은 정경유착 권력형비리 경영악습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그후 삼미 등 30대 50대 하는 그룹들이 잇따라 좌초할 때도 빚더미경영 문어발확장에 대한 냉소가 주류였다. 애주가들의 「두꺼비 의리」를 불러일으킨 진로그룹 역시 소유경영 자체가 동정을 받은 것은 아니다. 기아그룹의 경우는 양상이 좀 다르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고 업종전문화를 추구해온 모범적 국민기업을 내팽개쳐서는 안된다는 분위기가 있다. 정부는 기아가 이 지경이 됐는데 뭘 하고 있느냐는 질타를 받는다. ▼ 누적돼온 불행의 씨앗 ▼ 그런 것이 기아를 둘러싼 주변환경의 전모일까. 기아 노사는 진통 속에 자구안을 내놓고 있다. 여론을 내 편에 묶어두기 위한 노력도 병행된다. 그러나 여기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기아측은 감지해야 할 것같다. 여론의 동정이 필사의 자구를 방해할 가능성이 있다. 동정이 거품일 가능성도 있다. 여론이 약자 편인 점이 오히려 독약이 될 수가 있다. 그 불행의 가능성은 오랫동안 기아측 스스로 만들어왔다는 지적이 있다. 기업 기강이 느슨해지고 조직 통제력이 약화된 것은 비소유 경영층의 내적 결함 탓이라는 따가운 눈초리가 공존한다. 「국민기업」이라는 문패가 이 그룹에는 오히려 큰 부담이 될 소지가 있다. 「떨어질 곳에 떨어진다」는 말은 물리현상 뿐 아니라 경제현상에도 적용된다. 뿌린대로 거둔다는 이야기다. 사람과 돈과 기술의 기초조건을 갖추지 않고 경쟁에서 이길 수는 없다는 얘기다. 기아 사태와 관련, 姜慶植(강경식)부총리는 며칠째 『개별기업 문제에 간섭할 수 없다』고 반복하고 있다. 정치권 재계 금융권의 빗발치는 개입 주문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방임하는 정책노선을 견지하겠다는 것일까. 아니면 개입에 따른 책임 부담을 덜어낸 뒤 더 절묘하게 개입할 타이밍을 기다리는 것일까. 이 그룹에 대한 부도유예, 즉 실질부도가 몰고온 금융신용위기와 연관산업 및 지역경제의 불안이 경영에 실패한 일개 그룹의 문제일 수는 없다. 정부도 이같은 상황 전체를 개별기업의 문제로 간주한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정부는 지금도 제한적 개입을 하고 있다. 무조건 기아를 살려내라는 주문에는 무리가 있다. 무엇을 살릴 것인지, 그것을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을 버릴 것인지를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무조건적 기업 보호는 불가능하다. 설혹 가능하다 하더라도 정부 스스로 자제해야 할 시대요 국제환경이다. 보호는 규제의 또다른 얼굴이다. 정부에 선단을 호송하듯 경제를 끌고가라는 것은 규제투성이의 관치경제를 유지하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총론에서는 규제를 털어내라고 요구하면서 각론에서는 나만은 보호를 받겠다는 것은 잘못이다. 원칙없는 기업 보호는 결국 국민적 비용부담으로 되돌아온다. 우리 기업과 산업과 경제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또다른 요인이 된다. ▼ 정치적 伏線 있어선 안돼 ▼ 정부는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은 해서는 안되는지를 국민과 기업들에 알려주고 투명한 원칙을 제시해야 한다. 정치적 계산과 특정기업 처리에 대해 복선을 깔아서는 더욱 안된다. 기업과 금융권은 재편의 격동을 피해서는 안된다. 특화된 경쟁력 없이는 침하와 도태를 피할래야 피할 수 없다. 어느 은행 경영진이 여유있는 사무실을 임대하려 했더니 노조가 체면 깎인다며 반대했다고 한다. 한 은행이 임금을 줄이려 하니까 관련 노조연맹이 제동을 걸었다고 한다. 은행 자구가 발등의 불이라는 실감이 아직 부족한 탓일까. 배인준(경제부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