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 청문회]지상중계③

  • 입력 1997년 4월 25일 20시 11분


▼ 李圭正 민주당의원 ―국민은 대통령이 배신했다고 느낀다. 개혁의 실패가 아닌 개혁의 배반이라는 얘기를 들었나. 『아버님은 개혁과 국정에 대해 결연한 각오로 문민정부를 출범시켰다. 지금까지도 몸을 돌보지 않고 헌신적으로 일했다』 ―역사의 신은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했다. 개혁세력 중 증인과 같은 패거리가 개혁세력의 홍위병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결코 없다. 출범뒤 내 세력은 없었다』 ―박태중메모에 DJ, JP 관련내용을 동원해 폭로전으로 나간다고 돼 있는데 무엇을 폭로한다는 말인가. 『박씨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나는 언론보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유엔한국청년협회 회장에 취임한 것은 정치적 발판을 마련한 것 아닌가. 『아니다』 ―협회의 이사장은 총리급이고 전경련에서 월 3천만원씩 지원하도록 청와대가 지시했다는데…. 『잘 모른다. 유엔한국협회는 劉彰順(유창순)회장이 있고 그 밑에 유엔한국청년협회가 있는데 10년간 활동이 중단돼 왔다. 유회장의 권유로 회장이 됐다』 ―광화문팀은 언론보도를 분석하고 대응방안을 건의했다고 하는데 몇명이나 공보처 전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나. 『언론대책반이라는 용어가 이상하기는 하나 나와는 직접 관련이 없고 현 위원장이고 3당 합당시 아버지의 비서인 李性憲(이성헌)위원장이 이끌었으며 주로 언론을 분석하고 논조를 정리한다』 ―증인의 사조직이 정국을 논의하고 했다는데 소통령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있나. 『있다』 ―증인은 학생 또는 백수인데 80평이나 되는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고 여러 사조직을 운영해왔는데 경비는 어디서 조달했나. 『활동비는 별 필요가 없었다. 학비와 생활비는 집안에서 받았고 그외에는 돈이 들어가지 않았다』 ―대통령은 칼국수를 먹고 근검절약하는데 증인은 황태자그룹과 어울려 영동의 술집을 다녔다는데…. 『진짜 그런 일은 없다』 ―경호실장을 두고 있다는데 누구인가. 『경호원 1명만을 두고 있으며 이름은 서동청씨다』 ―민방사업에 관여하고 인사개입을 했으며 한보리베이트를 받았고 92년 대선자금에도 연관이 있다는데 정말로 결백한가. 『모두 믿지 않고 있는데 안타깝다. 개입하지 않았다』 ―박태중씨가 한달에 얼마나 지원했나. 『그는 절친한 친구다. 서로 갈 길이 다르다. 돈을 주고받는 친구사이가 아니다』 ―박씨가 증인에게 한달에 1천만원씩 줬다는데…. 『그런 얘기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박씨가 운영하던 시가 1억원짜리 파라오가 이웅렬회장에게 31억원에 넘어갔는데 증인에게 합법을 가장해서 정치자금을 주려했던 것 아닌가. 『의혹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사실이 아니다』 ―김기섭씨가 증인에게 일주일에 한번 보고했다는데…. 『나이로 볼 때 아버지같은 분인데 그분께 누를 끼쳐 너무나 죄송하다. 나와 관련한 인맥얘기가 나올 때는 너무나 괴롭다』 ―증인의 중학동 사무실에 김씨가 자주 출입해 미국 CIA가 신원을 확인해 청와대에 통보했다는데…. 『…』 ―박경식씨는 증인이 국회의원 부산시장 서울시장을 거쳐 대통령이 되려 했다고 말했는데…. 『박씨가 어떤 의도로 그런 얘기를 했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지난번 총선때 국회의원 출마에 관심을 가진 것은 사실이나 그외 아버님께 조금이라도 누를 끼치고싶지 않았다』 ▼ 朴柱千 신한국당의원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서 증인의 실명을 거론하는 의원이나 국민회의에 대해 법적조치를 취할 것이라했는데 지금도 그럴 생각이냐. 『그 당시는 너무나 억울하고 사실과 다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나 아버지가 대국민사과를 한 이후 그같은 언행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증인은 김대통령의 차남이지만 김대통령의 핵심참모로 대선때 상당한 역할을한 것으로 자타가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김대통령의 당선이후에는 어떤 역할을 했나. 『특별히 한 일이 없다. 지난 87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공부를 더하고 싶었으나 대선때문에 (미국에) 돌아가지 못했다. (아버지의) 임기중 학업을 더하는 것이 아버님을 도와드리는 일이라 여겨 고려대 경영대학원에 입학했다』 ―월간조선 3월호에서 인사문제 등과 관련해 시중여론을 취합해 김대통령에게 말씀드렸다고 했는데 시중여론은 어떻게 취합했나. 『시중여론이라는 말 그대로 시중여론이다. 학계 법조계 등 내가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만나 얻은 것이다』 ―시중의 여론중에서 김대통령에게 어떤 것을 얘기했나. 『가능한 한 가족된 입장에서 비판적인 부분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노력했다』 ―박경식원장이 촬영한 비디오테이프가 증인의 국정개입 의혹과 개입방식을 밝히는 중요 단서로 부각되고 있다. 특별히 그곳에서 통화를 한 이유가 뭔가. 『박씨의 병원을 찾은 것은 94년말부터 95년말사이 세번정도에 불과하다. 촬영사실을 알았다면 그같은 통화를 했겠는가』 ―비디오 테이프 내용중 「YTN 玄昭煥(현소환)사장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가 집중적으로 올라온다」는 증인의 언급이 있는데 「올라온다」는 것은 어디서 올라온다는 말인가. 『언론계에 선후배들이 다수 있다. 이들을 통해 이런 저런 얘기를 들었다는 것이지 특정기관으로부터 정보보고를 받은 것은 아니다』 ―공개된 테이프에서 증인과 통화한 상대자는 누구인가. 『상대가 누구인지는 밝힐 수는 없다. 양해해달라』 ―김기섭 전안기부 차장이나 청와대 관계자가 아닌가. 『그렇지 않다』 ―테이프에 따르면 金佑錫(김우석) 전장관이 YTN 사장 자리를 원한다는 이야기가 모임에서 나온 것으로 돼 있는데 어떤 모임인가. 『김장관이 건설부장관에서 물러난 이후 같은데 그 모임에 내가 참여한 것이 아니라 추후 간접적으로 전해 들은 것이다』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과 이 문제로 상의를 했다는데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사실 이외에 공식 직함이 없는 증인이 어떤 자격으로 정무수석과 상의를 했나.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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