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長燁(황장엽)전북한노동당비서는 중국과 필리핀에서의 67일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2월12일부터 3월18일까지 34일간 머문 북경에서 처음 며칠간 그는 북한으로부터의 테러위협과 북한에 두고온 가족의 신변안전 문제로 인한 불안과 긴장감으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약간 시간이 지나 안정을 되찾은 그는 오전5시반에 기상, 자정이후에 잠자리에 들었으며 일주일에 한번 정도 샤워할 때를 빼고는 방밖으로 나오지 않고 자신의 방에서 독서 및 저술활동에만 열중했다는 것. 이어 필리핀에서 군당국이 황씨를 위해 마련해준 체류시설은 북경 영사부건물에 비해 훨씬 넓고 쾌적한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덕분에 한달이상을 끌었던 韓中(한중)간 망명교섭으로 다소 지친 기색이었던 황씨는 곧 심신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황씨의 하루일과는 시간에 매우 엄격했던 독일의 철학자 칸트와 닮은 데가 많았다. 매일매일의 기상 및 취침시간이 일정했고 표정과 몸가짐에서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는 하루를 새벽 명상으로 시작했다. 가끔 관계당국이 가져다준 수십권의 책을 읽거나 케이블TV를 보기도 했다. 아침 저녁으로 숙소주변을 산책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그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 것은 집필활동이었다. 두달여의 북경과 필리핀 체류기간중 그가 쓴 원고량은 수백페이지에 달했다. 기억력에만 의존해 그많은 양의 글을 쓰는 것이 놀라울 정도였다. 황씨가 머물렀던 시설의 경비는 한국에서 파견된 경호요원들이 맡았고 그 바깥경비는 필리핀 군정보국 소속 경호요원들이 담당했다. 그는 필리핀 체류기간이 한달에 가까워오면서 하루라도 빨리 한국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그는 한국행이 다가오자 서울에 도착할 때 발표할 성명에 담을 내용에 몹시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문 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