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미, 로니 곁으로 떠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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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던 퍼스트레이디, 낸시 레이건(1921∼2016)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고 인기 있는 대통령 가운데 한 명인 로널드 레이건(재임 기간 1981∼1989년)의 부인 낸시 데이비스 레이건 여사가 6일 별세했다. 향년 95세.

레이건대통령기념도서관의 조앤 드레이크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내고 “낸시 여사가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심부전증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남편처럼 할리우드 영화배우였던 낸시 여사는 미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대통령 부인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1921년 7월 뉴욕에서 보험사 중개인과 여배우 사이에서 태어났다. 정치에 관심이 없던 그는 이혼남인 레이건을 만나 할리우드 스타의 길을 접고 정치인 아내로 변신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이 캘리포니아 주지사(1967∼1975년)일 때는 베트남전 참전군인 돕기에 나섰고, 백악관 안주인이 된 뒤에는 겉으로는 온화하면서도 막후에선 남편에게 정치적 조언을 아끼지 않는 동반자였다.

1986년 레이건 행정부 최대 스캔들 중 하나인 ‘이란 콘트라 사건’(미국이 비밀리에 이란에 무기를 판매한 사건)이 터지자 백악관 참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설득해 대국민 사과를 하도록 만든 것도 낸시 여사였다. 특히 미국 역사상 유명한 마약 퇴치 캠페인으로 꼽히는 ‘아니라고 말하라(Just say no)’ 운동을 주도했다.

레이건 부부는 깊은 사랑으로도 유명했다. 1981년 3월 레이건 전 대통령은 취임 두 달 만에 존 힝클리가 쏜 총에 왼쪽 가슴을 맞는 테러를 당했다. 병원으로 옮겨진 뒤 여간호사들이 수술을 위해 그의 옷을 벗기려 했다. 그러자 아직 의식이 있던 레이건은 간호사들에게 “자네들 낸시에게 허락은 받고 내 몸을 만지는 건가”라고 유머를 건네 생사의 순간에도 부인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드러냈다.

둘은 70세가 넘은 고령에도 서로를 ‘로니(Ronnie)’와 ‘마미(Mommie)’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위대한 소통자’로 통했던 레이건은 생전 2만여 통의 편지를 썼는데 이 가운데 낸시 여사에게 보내는 편지는 대개 ‘사랑하는 마미에게’로 시작했다. 레이건은 1994년 11월 자신의 알츠하이머 투병 소식을 국민에게 전하는 마지막 편지에서 이같이 적었다. “이 병은 가족들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을 줍니다. 낸시가 질 짐을 내가 조금이라도 덜어줬으면 하는 게 마지막 바람입니다.”

미 정치권은 일제히 조의를 표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골프를 치던 중 성명을 내고 “그녀는 대통령 부인의 역할을 재정립했다”고 애도했다. 각자가 “레이건의 적통”이라고 주장하는 공화당 대선 주자들도 가세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위대했던 대통령의 위대한 부인이었다”고,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나라와 남편에 대한 열정을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의 공동 성명에서 “자애롭고 헌신적인 퍼스트레이디였다”고 추모했다.

낸시 여사는 일주일의 추도 기간 후 빠르면 12일 캘리포니아 시미밸리의 레이건대통령기념도서관 내에 있는 남편(2004년 사망) 묘역 옆에 묻힌다. 유족은 아들 로널드 레이건 주니어 등 1남 1녀.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낸시 레이건#퍼스트레이디#로널드 레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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