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암 치료 거부한 75세 홀몸노인, 마지막 재산 40만원 이웃에 남기고 떠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5일 03시 00분


코멘트

“지금까지 보살펴준 나라에 감사하고 매일 찾아와 죽 끓여준 봉사자 고마워”

고 최오남 씨가 장수노트에 작성했던 유언.남은 재산 전부를 불우이웃에게 기부한다고 적혀 있다. 광주 서구 제공
“지금까지 보살펴준 국가에 감사드려요. 제가 죽은 뒤 아파트 보증금과 통장에 남은 돈이 있다면 모두 어려운 이웃을 위해 드리고 싶습니다.”

최근 세상을 떠난 홀몸노인 최오남 씨(75)는 이웃이 장례를 치러주는 공영장례를 신청하며 ‘장수노트’에 이 같은 유언을 남겼다. 장수노트는 홀몸노인이 생전에 장례 계획을 기록하는 일종의 ‘임종 기록부’다.

최 씨의 삶은 평생 외로웠다. 그는 보육원에서 자라 일용직 근로자로 생계를 꾸리며 50세가 넘어 결혼했다. 아내는 딸을 하나 둔 이혼녀였다. 그가 가정생활을 꾸리던 중 부인이 몸이 아파 숨지자 의붓딸도 집을 나갔다. 그는 10여 년 전 다시 혼자가 됐다.

최 씨는 지난해 10월 병원에서 위암 4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지만 암은 간 담낭으로 퍼졌다. 그는 9월 병원 치료를 포기하고 광주 서구 금호1동 영구임대아파트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홀로 죽음을 맞으려 했다. 그는 1500가구가 사는 아파트에 20년 넘게 살았지만 이웃이 없었다. 그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없는 듯 살았다. 고독사를 선택한 최 씨는 서명란 금호1동 주민센터 사회복지사(48)에게서 집안일을 보살펴주는 방문서비스를 받으라는 제안을 받았다. 최 씨는 9월 23일 그 제안을 받아들여 공영장례를 신청하고 장수노트를 작성했다. 최 씨는 이후 이웃 이순자 씨(56·여)의 방문서비스를 받았다. 이 씨는 매일 최 씨의 집을 청소하고 죽을 끓여줬다.

최 씨는 지난달 27일 병원에 다시 입원하기 전 이 씨에게 화장지로 싼 금가락지 한 쌍을 건넸다. 최 씨는 “생의 끝자락을 보살펴준 이 씨와 국가가 고맙고 감사하다”고 했다. 최 씨는 입원한 지 15일 만인 11일 오전 1시 의료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최 씨는 평소 노인연금 20만 원에 기초수급비 28만 원을 더한 48만 원으로 살림을 꾸렸다. 막바지 투병 때에는 돈을 아끼기 위해 병원에서 권하던 영양제도 거부했다. 그의 재산은 병원에 남긴 현금 40만 원 이외에 아파트보증금 139만 원, 통장 잔액 9만8000원이 전부다. 이웃들은 최 씨가 전 재산 기부유언을 남김에 따라 현금 40만 원은 동네 저소득층에 기부했다. 또 아파트 보증금도 기부가 가능한지 확인키로 했다.

최 씨의 마지막을 돌본 이 씨도 최 씨가 건넨 쌍가락지를 금호1동 주민센터에 기부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홀몸 노인#독거 노인#고독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