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한국 간 딸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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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엄마의 사연
■ 12번째 서울 찾아온 일본인 어머니의 절규

한국에서 사라진 딸 나카무라 미나코 씨를 15년째 찾고 있는 어머니 나카무라 구니 씨가 3일 오후 자신이 묵고 있는 서울 중구의 한 호텔 카페에서 딸 얼굴이 담긴 실종 전단을 보며 슬픔에 잠겨 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한국에서 사라진 딸 나카무라 미나코 씨를 15년째 찾고 있는 어머니 나카무라 구니 씨가 3일 오후 자신이 묵고 있는 서울 중구의 한 호텔 카페에서 딸 얼굴이 담긴 실종 전단을 보며 슬픔에 잠겨 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2일 오후 수심 가득한 표정의 일본인 여성이 일본대사관 직원과 함께 서울 종로경찰서로 들어섰다. 1998년 4월 한국에서 사라진 딸 나카무라 미나코(中村三奈子·33) 씨를 15년째 찾아 헤매는 나카무라 구니 씨(69)였다.

실종 당시 19세였던 미나코 씨는 대입 재수학원 등록을 준비하던 중 일본 니가타 공항에서 출국해 한국 김포공항으로 입국한 기록만을 남기고 갑자기 사라졌다. 수사에 나섰던 일본 경찰은 나카무라 씨 이름으로 예약된 서울행 대한항공 티켓과 실제 그가 해당 항공편으로 서울에 입국한 사실을 확인한 것 외에는 어떤 흔적도 찾지 못했다. 1999년 12월 구니 씨의 수사 의뢰를 받고 미나코 씨를 찾아 나선 한국 경찰도 큰 성과 없이 2005년 사건을 미제로 종결했다.

미나코 씨가 실종된 사실이 처음 알려지던 해 일본 사회도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나카무라 미나코를 찾는 모임’이 결성되기도 했고 TV 프로그램에서는 초능력자를 앞세워 미나코 씨를 찾는 시도도 했다. 일부 언론은 나카무라 씨의 납북 가능성까지 조심스레 제기했다. 하지만 이 같은 관심마저도 세월과 함께 사라져 버린 상태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잊어도 엄마는 딸을 포기하지 못했다. 미나코 씨는 구니 씨가 일찍 남편과 사별한 뒤 홀로 억척스럽게 키워낸 막내딸이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구니 씨는 딸을 찾느라 일자리까지 그만뒀다. 그는 “대학에 꼭 가겠다며 공부에 열중하던 딸이 왜 갑자기 한국으로 떠난 것인지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다”며 이날 한국 경찰에 재수사를 부탁하고 돌아갔다.

이번이 12번째 한국 방문이라는 구니 씨는 3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기자와 만나 “넋을 놓고 있는 것보다는 딸이 사라진 한국에 있는 것이 마음 편하다”고 했다. 한국 공항에 내려 공기를 들이마시면 왠지 딸과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진다고도 했다.

그는 아직도 딸과의 마지막 대화를 잊지 못한다. 유독 애교가 많던 딸은 실종 전날 밤까지도 교사였던 구니 씨가 학교에 가져갈 장식품 교재를 함께 만들었다. 그는 “따로 옷이나 돈을 챙겨간 흔적도 전혀 없었다. 아직도 딸이 사라진 이유를 짐작조차 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구니 씨는 한국에 와 있는 동안 서울 곳곳에 딸을 찾는 전단 1000장을 붙였다. 그가 한국어와 일본어로 직접 제작한 전단에는 딸의 마지막 모습과 함께 ‘어디서 뭘 하고 있니, 건강하게 있다고 알려주렴. 기다리고 있단다’라는 애타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실종 당시 19세의 나카무라 미나코 씨
실종 당시 19세의 나카무라 미나코 씨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한파가 닥치고 큰눈도 내렸지만 구니 씨는 모든 일정을 걸어서 소화했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라도 딸과 마주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지막 기대감 때문이다. 딸이 언제 돌아올지 몰라 딸과 함께 살던 집에 아직 그대로 살고 있다는 그는 1년에 한 번씩은 한국을 방문하려고 노력한다. 딸을 찾으려면 한국말을 할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2008년에는 고려대 어학당에서 한 달간 한국어를 배우기도 했다. 그것만으로는 정성이 부족한 것만 같아 딸이 실종된 4월 7일이면 하루 종일 공항에서 한국으로 떠나는 관광객들에게 전단을 나눠 주곤 한다.

그는 “한국의 젊은 여성들을 볼 때마다 모두 다 잃어버린 딸 같아 눈물이 난다”고 했다. 출국을 몇 시간 앞둔 그는 마지막으로 “정말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소식만이라도 알고 싶다. 한국인 여러분이 우리 딸을 잊지 않고 계속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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