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크어위시재단을 통해 빌 게이츠 전 MS 회장(오른쪽)을 만나는 꿈을 이룬 신주환 군. MS가 신 군과 게이츠 전 회장이 만나는 장면을 공개하지 않아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사진을 합성했다. 메이크어위시재단 제공·동아일보DB
미국 현지 시간 19일 오전 9시 시애틀 인근 레드먼드 시의 한 건물. 10년 뒤 미국 중산층 가정을 예측해 만든 ‘미래의 방’에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 전 회장이 싱글벙글 웃으며 걸어 들어왔다. 그는 긴장한 한국 소년에게 밝게 웃는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그는 넓은 소파를 마다하고 소년 가까이에 있는 작은 의자에 앉았다. 백혈병을 앓는 소년에게 평범한 위로 대신 고통을 이겨낼 힘을 줬다. “몸이 불편해도 모니터와 키보드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가깝게 지낼 수 있단다. 기술이 발전하면 앞으로 환경은 더 나아질 거야. 희망을 잃지 말고 (삶을) 즐기렴.”
게이츠 전 회장이 백혈병을 앓고 있는 한국 고교생에게 희망을 선물했다. 그는 19일 MS 본사로 세종과학고 2학년 신주환 군(18)을 초청했다. 신 군이 지난해 9월 ‘빌 게이츠 전 회장을 만나고 싶다’는 소원을 적은 편지를 난치병 어린이의 소원을 들어주는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에 보냈다.
‘병원 무균실 생활은 끔찍했지만 더 괴로웠던 건 불공평함의 밑바닥을 기고 있는 불쌍한 아이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당신처럼 성공해 눈물 흘리는 사람들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 제 우상인 당신을 만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결국 재단 측의 노력으로 1년 만에 만남이 성사됐다.
신 군은 2009년 고교 입학 한 달 만에 급성림프구성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1년간의 집중 항암치료 덕에 지금은 회복 단계지만 완치되려면 3년간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날 신 군은 게이츠 전 회장에게 대뜸 “당신의 삶의 모토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삶을 사는 것이 내 삶의 지향점”이라며 “지금은 약, 음식, 화장실 등 정상적인 삶을 사는 데 필요한 것조차 없는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고 답했다.
신 군은 게이츠 전 회장에게 왜 남을 돕고 사는지도 물었다. 그는 “부모님은 자선활동의 중요성에 대해 끊임없이 강조했지만 20대에는 자선활동이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일에만 몰두했다”며 “40대가 돼서야 MS의 가치가 높아져 내 주식의 가치가 50조 원으로 오르면서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만들어 모든 힘을 쏟게 됐다”고 말했다.
신 군은 이어 “현재의 성공은 어린이 시절 꿈꿨던 것과 비슷한 것이냐”고 물었다. 게이츠 전 회장은 “꿈꿨던 것보다 훨씬 더 성공했다고 생각한다”며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좋은 학교에서 좋은 교육을 받았고 13세 때 처음 컴퓨터를 보고 매료돼 고등학생 시절 컴퓨터에 매달렸다”고 했다.
게이츠 전 회장은 신 군에게 대학을 중퇴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도 밝혔다. 그는 하버드대에 입학한 지 2년 만인 1975년 친구인 폴 앨런과 MS를 창업하며 학교를 자퇴했다. 그는 “PC의 가능성을 본 뒤 빨리 사업을 시작하고 싶어 학교를 그만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졸업한 후에 시작했어도 늦지 않았을 것 같다”며 “MS의 최고경영자인 스티브 발머와 같은 중요한 사람도 다 대학시절에 만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신 군에게 “확고한 꿈이 있더라도 학업은 다 마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신 군은 진지할 것만 같던 게이츠 전 회장이 유머에도 소질이 있었다고 전했다. 신 군이 “포커 게임에서 딴 돈으로 MS를 창립했다는 소문이 있다”고 하자 그는 “그 정도로 돈을 많이 따지는 않았다”고 말해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신 군은 마지막으로 “게이츠 전 회장보다 더 ‘큰사람’이 돼 어려운 어린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쓰고 싶다”며 “그가 내 소원을 이뤄줬듯 나도 어려운 어린이들의 소원을 다 들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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