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르트 아줌마’ 탄생 40돌… 꼬박 33년간 국회로 ‘배달 출근’ 이재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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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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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님 건강은 제가…서민들 살림살이는 의원님들이 책임을”

1977년 ‘야쿠르트 아줌마’ 일을 시작한 이래 33년 동안 매일 아침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배달 출근’을 하는 이재옥 씨는 “국회의원 고객만 290명이 넘고 보좌관 고객도 많다 보니 ‘영등포구 구의원에 출마하면 팔을 걷어붙이고 도와주겠다’는 농담도 자주 듣는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한국야쿠르트
1977년 ‘야쿠르트 아줌마’ 일을 시작한 이래 33년 동안 매일 아침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배달 출근’을 하는 이재옥 씨는 “국회의원 고객만 290명이 넘고 보좌관 고객도 많다 보니 ‘영등포구 구의원에 출마하면 팔을 걷어붙이고 도와주겠다’는 농담도 자주 듣는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한국야쿠르트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이 한창일 땐 국회의사당 앞은 시위대를 해산하려고 쏜 최루탄 가스가 자욱했어요. 한 번 배달하려면 얼굴이 눈물콧물 범벅이 될 각오를 해야만 했지요. 배달 수레를 끌고 시위대와 전경의 대치 현장을 지나 국회 앞에 도착하는 것만으로도 등줄기에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죠.”

‘야쿠르트 아줌마’로 통하는 한국야쿠르트의 방문판매원 이재옥 씨(59). 한국야쿠르트 영등포영업소 서여의점 소속인 그는 1971년 조직돼 14일 40주년 기념식을 갖는 이 회사 1만3500여 야쿠르트 아줌마 중에서도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로 통한다. 매일 아침 이 씨가 배달수레를 밀고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여의도 국회의사당. 1977년 야쿠르트 배달 일을 시작한 이후 꼬박 33년간 이 씨는 국회로 ‘배달 출근’을 했다. 33년이면 박정희 대통령에서 이명박 대통령까지 대통령만 꼬박 7번이 바뀐 시간이다.

이 씨의 고객 명단에 올라있는 국회의원만 현재 290여 명. 이 씨에게 의원 이름만 대면 해당 의원의 의원회관 방 번호가 술술 흘러나왔다. 18대 국회 개원 때에는 의원 고객이 좀 더 많았지만 선거법 위반 등으로 금배지가 떨어지거나 행정부에 입각하는 의원이 생기면서 조금 줄어들었다. 4년마다 반복되는 일이라고 했다.

“TV서 보면 목소리 높여가며 서로 비방하고 싸우고들 하지만요 실제로 만나보면 다정다감하고 소탈한 의원님이 대다수세요. 아침에 복도나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이른 시간에 고생 많다’며 격려의 말씀이나 악수를 건네주는 분이 얼마나 많은데요. 홍준표, 이재오 의원 등이 그러셨죠.” 매일 국회의원을 고객으로 만나는 기분을 묻자 돌아온 이 씨의 답변이다.

유신체제 말기인 197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국회를 제집처럼 드나든 그가 풀어놓는 국회의 변화상도 흥미롭다. “예전엔 국회에 장관 한 분 뜨면 국장에 과장에 수행원만 한 부대씩 됐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민주화가 돼서 그런지 그런 모습이 많이 줄었어요.” 국회의사당이 생업의 무대이다 보니 굴곡진 우리 현대사의 현장에 서 있던 날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10·26사태 아니면 12·12쿠데타 때 같은데 아침에 배달 나왔더니 국회 정문 앞에 무장한 군인들이 쫙 깔려 있더라고요. 어찌나 서슬이 퍼런지 결국 그날은 배달을 못하고 뒤돌아 나와야 했습니다.”

국회의원을 포함해 의원 보좌관과 국회 사무처 직원까지 합치면 530명이 넘는 국회 고객을 관리하는 이 씨는 하루에 배달하는 제품만 해도 800개가 넘는다. 단골 고객이 많은 덕분에 이 씨가 속한 지점은 본사가 전국에서 한 지점에만 수여하는 최우수지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씨에게 국회의원 고객에게 하고픈 말이 있는지 물었다. “곁에서 지켜보니 의원님들이 정말 바쁘게 사시더라고요. 저는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매일 아침 건강을 배달해 드릴 테니, 의원님들은 힘내서 저 같은 서민들의 살림살이를 보다 잘 살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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