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당뇨 몽골소녀 열두 살 정음이의 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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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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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공부해 나 같은 어린이 돕고 싶어”

“하루 세번 인슐린 주사
이젠 많이 아프지 않아

나 때문에 불법체류 택한
엄마아빠 보면 가슴 아파”

9일 경기 하남시 집에서 몽골소녀 정음(가명)이가 자신이 만든 돋보기로 책을 읽고 있다. 돋보기 하나로는 글자가 보이지 않아 문구점에서 파는 돋보기 두 개를 몽당연필에 붙여 만들었다. 하남=신민기 기자
9일 경기 하남시 집에서 몽골소녀 정음(가명)이가 자신이 만든 돋보기로 책을 읽고 있다. 돋보기 하나로는 글자가 보이지 않아 문구점에서 파는 돋보기 두 개를 몽당연필에 붙여 만들었다. 하남=신민기 기자
4년 전 한국에 온 몽골소녀 정음이(가명·12)의 필통은 특이한 물건으로 가득하다. 끝에 뾰족한 바늘이 달린 채혈침과 솜뭉치, 각설탕 두어 개와 장난감 돋보기 등이다. 초등학교 6학년 정음이의 필통에 연필은 한 자루밖에 없다.

9일 오후 학교를 마치고 집 근처에 있는 경기 하남시 모자이크 지역아동센터를 찾은 정음이는 동생들과 한바탕 뛰어놀았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게 공부도 가르치고 한국 생활도 도와주는 곳이다. 또래보다 키가 큰 정음이가 동생들을 업었다 안았다 했다. 갑자기 웃음소리가 멎더니 정음이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조용히 자리로 가 필통을 꺼냈다.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손끝을 바늘로 찌르더니 배에 달려 있는 혈당 측정기에 핏방울을 떨어뜨렸다. 각설탕을 우걱우걱 씹어 먹고는 진정이 됐는지 이마를 쓸어내렸다. 네 살 때부터 소아당뇨를 앓아온 정음이는 이런 혈당 체크를 하루에 일곱 번씩 한다. 배에 늘 꽂혀 있는 바늘을 통해 하루 세 번 인슐린 주사를 맞는다. 열 손가락에는 바늘 자국이 까맣다. 주삿바늘이 꽂힌 배도 딱딱해졌지만 “딱딱해져서 그런가, 이제는 많이 아프지 않아요” 하고 웃는다.

지역아동센터의 공부시간. 정음이가 이번에는 필통에서 장난감 돋보기를 꺼내 들었다. 정음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눈이 갑자기 나빠졌다. 시신경에 문제가 생겨 수술을 해도 고쳐지질 않는다. 비싼 안경 대신 정음이는 직접 만든 장난감 돋보기를 쓴다. 문구점에서 파는 500원짜리 동전만 한 돋보기 두 개를 몽당연필에 테이프로 칭칭 감은 것이다. 코가 닿게 책 가까이 얼굴을 대고 한 글자씩 또박또박 책을 읽는다. 두통이 생겨 한 번에 국어책 두 장밖에 읽을 수 없지만 공부가 재미있다며 100점 맞은 시험지를 죽 늘어놓았다.

정음이의 부모는 스스로 불법체류자가 됐다. 몸이 아픈 정음이를 위해서다. 몽골에서는 인슐린 값이 너무 비싸 치료할 엄두를 못 낸다. 정음이의 아버지는 몽골에서 학교 체육선생님이었지만 한국에 와서는 이삿짐 나르는 일을 하며 일당을 번다. 몽골에서 옷가게를 운영했던 어머니는 정음이를 돌보기 위해 옷 만드는 공장에서 밤에 일한다.

“엄마 아빠가 불법체류자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내일도 마음 놓고 학교에 갈 수 있게요.” 정음이의 꿈은 한국에서 걱정 없이 공부해 의사가 되는 것이다. “당장 중학교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한국에서 공부를 계속해 당뇨로 아픈 어린이들이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되는 기술을 개발하고 싶어요.”

후원 문의는 기아대책 02-544-9544.

하남=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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