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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월 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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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의 중국 대만 싱가포르 담당 2인자였던 존 우드(45) 씨. 그는 얼마 뒤 ‘제3세계 어린이에게 꿈과 미래를 안겨 주겠다’며 연봉 100만 달러를 받던 회사를 떠났고 2000년 ‘룸 투 리드(Room To Read·책 읽을 공간)’라는 단체를 세운 뒤 곳곳에 도서관과 학교 컴퓨터실을 짓기 시작했다. 그동안 베트남 캄보디아 네팔 스리랑카에 세운 도서관과 컴퓨터실이 5000개를 넘어섰다.
지난해 12월 그의 샌프란시스코 사무실에서 마주한 그는 피곤해 보였다. 일본에서 모금행사를 마친 뒤 전날 밤 돌아왔다는 그는 먼저 블랙커피를 한 잔 청해 마셨다.
―잘나가던 자리를 던져 버린 게 8년 전이다. 오늘날의 모습에 만족하는가.
“정보기술(IT) 금융 분야에서 성공한 친구들은 돈을 많이 벌었어도 삶의 목표가 뭔지를 끊임없이 묻고 있다. 암스테르담이나 밴쿠버, 홍콩, 런던에서 끊임없이 ‘돕고 싶다. 방법을 알려 달라’는 연락이 온다.
콜로라도 주에 베일(Vail)이라는 부촌이 있다. 그곳에서 은퇴자들이 가장 많이 복용하는 약이 뭔지 아나? 우울증 약이다. 부를 축적했어도 공허함은 채울 수 없다. 나는 남을 위한 일에 골몰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고 있다.”
―네팔에서 뭘 봤기에 인생을 바꿨나.
“난 책과 함께 자랐다. 먼 마을 도서관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서 책을 빌려 한 권씩 읽던 즐거움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런데 지구 한쪽의 어린이들에게는 그런 즐거움이 없다니. 삶의 일부가 비어 있는 아이들을 본 느낌이었다. 당시 ‘텅 빈 도서관’은 한 장의 스틸사진처럼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는 2006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잃어버린 사춘기(의 열정)를 되찾은 것 이상을 히말라야에서 얻었다”고 썼다. 이 책은 한국어로 번역돼 2월에 ‘히말라야 도서관’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다.
―그래도 30대 후반 때의 백만장자 생활이 그립지 않나. 결혼도 아직 안 했고 집도 없는데….
“지구상 95%의 사람보다 내 삶이 편하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를 생각했다.”
그는 첫 3년간 무급으로 일했다. 그러나 룸 투 리드 이사회가 “그런 식으로는 오래 못 한다”며 연봉 11만 달러 (약 1억 원)를 제시했다. 그는 “소득이 10분의 1로 줄었다”고 했다.
―한국에도 40세를 전후로 성공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도 뭔가에 헌신하고 싶지만 그 뒤의 삶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있다.
“남들도 나처럼 하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5∼10%만 시간을 할애해 남을 도울 순 없을까. 우리 단체의 후원자 중엔 부자가 많다. 그들의 가장 큰 고민은 ‘모든 걸 다 갖고 자란 내 아이들에게 노력이나 성취, 돈, 희생의 의미를 어떻게 가르쳐 줄까’라는 것이다. 그들은 자원봉사와 자선단체에서 봉사하며 아이들에게 바람직한 미래를 알려주고 싶어 한다.”
―미국에도 도시 빈민 문제가 있는데 왜 남의 나라 어린이의 앞날을 걱정하나.
“난 부유한 나라 기업인을 만날 때마다 ‘책임감’을 강조한다. 한국의 경우 그동안 얼마나 선진국에 근접했는가. 삼성 현대 대우와 같은 한국 기업은 글로벌 경영을 한다. 그런데도 왜 도움의 손길은 국경선에서 멈춰야 하나. 베트남에 출장가면 한국 기업 간판과 홍보물이 넘쳐 난다.”
―도서관에 책도 보급하는데, 어떤 책을 선택하는가.
“영어 책도 주지만 현지 언어를 쓰는 작가와 현지 화가를 선발해 현지화를 위해 노력한다. 삽화도 다시 그리고, 본문도 현지어로 다시 쓴다. 이렇게 만든 책이 250종이다. 문화적 충돌이 생길 수 있는 책은 포함시키지 않는다.”
―기업인 출신 비정부기구(NGO) 리더로서 직원들에게 ‘경영효율’을 강조한다고 들었는데….
“100달러를 기부받으면 87달러는 책과 컴퓨터 지원 프로그램에 쓴다. 13달러만 모금활동 및 사무실 임차료로 쓴다. 미국 자선단체에선 100달러 중 평균 35달러가 행정비용으로 들어간다.”
―업계 평균의 3분의 1만 행정비용으로 쓸 수 있는 비결은….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한 해 평균 500번씩 인터뷰와 기부금 유치를 위한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올해 들어 25만 마일을 날아다녔다. 비행기 삯은 무료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간부가 자신이 갖고 있는 300만 마일의 마일리지를 내게 쓰라고 주었다. 홍콩 런던에 사무실이 있지만 역시 크레디 스위스 은행이 무상으로 빌려 줬다.”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는 미국에 도서관 2500개를 세웠다. ‘제3세계 도서관 보급의 카네기’가 꿈이라고 들었는데, 10년 뒤 자신의 모습을 그려 본다면….
“2010년이면 도서관 학교 컴퓨터실을 1만 개 짓게 된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만든 재단과 손잡고 이 일을 진행 중이다. 2018년이면 학교 2000개, 도서관 2만 개를 짓는다. 800만 명의 어린이가 학교와 도서관을 매일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피곤이 가시지 않아 보였던 그의 입가에 비로소 미소가 번졌다.
샌프란시스코=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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