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95는 사랑입니다”]박종암 씨&나혜진 씨

  • 입력 2007년 3월 15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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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2시 경기 수원시청 앞 목표지점에 골인한 장애인 마라토너 박종암 씨(가운데)와 나혜진 씨(왼쪽), 나 씨의 어머니 이점자 씨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박종암 씨
13일 오후 2시 경기 수원시청 앞 목표지점에 골인한 장애인 마라토너 박종암 씨(가운데)와 나혜진 씨(왼쪽), 나 씨의 어머니 이점자 씨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박종암 씨
“서울 코스에서 대회 신기록을 세울 게요.” 2007서울국제마라
“서울 코스에서 대회 신기록을 세울 게요.” 2007서울국제마라
희망은 무릎꿇지 않는거야, 혜진아!

“나와 주었구나. 고맙다.” “아저씨….”

13일 오후 2시 경기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수원시청 앞.

당일 목표지점을 향해 다가가는 장애인 마라토너 박종암(55·호주 교포) 씨의 볼에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머니와 함께 테이프를 붙잡고 박 씨를 맞은 나혜진(23·경기 부천시) 씨의 눈시울도 점점 붉어졌다.

▶본보 10일자 34면 참조
“시민 갈채에 추위고생 훌훌”

박 씨는 2000년 호주의 정유회사에서 일하다 산업재해로 오른쪽 발가락을 모두 잃는 장애를 입었지만 걷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료진의 예상을 깨고 마라톤을 다시 시작했고, 18일 서울에서 열리는 ‘2007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제78회 동아마라톤대회’ 참가에 앞서 동아일보사와 월드비전이 벌이고 있는 ‘나눔 마라톤’ 성금 마련을 위해 1일부터 15일까지 부산∼서울을 종주하고 있다.

혜진 씨와 박 씨의 만남은 동아일보 10일자 박 씨의 대전 경유 기사가 계기가 됐다.

혜진 씨의 아버지인 나정철(59) 씨는 이날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박 씨의 연락처를 물었다.

“딸(혜진)이 2004년 충남 천안에 있는 대학으로 통학하기 위해 열차를 탔다가 사고를 당해 박 씨와 비슷한 장애를 입었어요. 그 충격으로 학교도 그만뒀고 아무도 만나려 하지 않으니….”

나 씨는 박 씨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한 뒤 “딸을 한 번만이라도 꼭 만나봐 달라”고 간곡히 당부했다.

박 씨는 수원시청 앞 골인지점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혜진 씨는 절대 나가지 않겠다고 버텨 만남은 무산되는 듯했다. 나 씨도 아내와 아들이 대신 약속장소로 갈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약속시간이 다가오자 혜진 씨가 마음의 문을 열었다. 박 씨가 골인지점에서 갑자기 눈물을 쏟아낸 것은 예상치 않았던 혜진 씨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박 씨는 자신의 장애 부위를 보여주며 혜진 씨에게 절대로 꿈과 용기를 잃지 말라고 격려했다. 나 씨의 초청에 기꺼이 응해 집까지 찾아가 같이 식사도 하고 밤늦게까지 자신의 장애 극복담을 들려주기도 했다.

혜진 씨는 14일 한층 밝아진 모습으로 친구들과 전화를 했고 어머니를 따라 미장원에 가기도 했다.

박 씨는 “13일 동안 뛰면서 여러 만남이 있었지만 혜진이와의 만남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호주에서 날아온 것은 아마도 이번 만남을 위해서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나 씨는 “혜진이가 다른 사람과 말을 한 것이나 식구들이 얼굴을 활짝 펴고 웃어본 것 모두 악몽 같았던 사고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며 “박 씨는 장애 입은 몸으로 달리기를 하면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주고 있다”고 말했다.

수원=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 참가선수 중 최고기록 키루이 입국

“케냐 선수 잘뛰는 건 맹훈련 덕분…서울~부산 5번 왕복할 거리 연습”

“케냐 선수들이 타고났다고요? 아니에요. 우리가 잘 달리는 것은 훈련량이 많기 때문이에요.”

마라톤 왕국 케냐 선수들에 대해 가지는 선입견 중 하나는 ‘천혜의 자연 환경 속에 선천적으로 타고난 체격을 갖췄다’는 것. 그러나 18일 열리는 2007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제78회 동아마라톤대회에 참가하는 선수 중 기록 랭킹 1위인 폴 키프로프 키루이(27·케냐)는 14일 입국 인터뷰에서 “알려진 것과 전혀 다르다. 우리가 잘 달리는 것은 오로지 훈련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로테르담마라톤에서 2시간 6분 44초의 개인 최고기록을 세운 키루이는 서울국제마라톤에 대비해 지난해 12월부터 3개월 보름간 훈련했다. 매일 30∼40km를 달렸으니 서울∼부산을 5번은 왕복할 거리인 3000∼4000km를 달린 셈이다.

키루이는 “세계 기록(2시간 4분 55초) 보유자인 폴 터갓은 나보다 훈련을 더 많이 한다. 우리가 타고난 마라톤 선수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라고 말했다. 이봉주(37·삼성전자) 이후 한국 마라톤이 주춤하고 있다고 하자 “그것은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할 수 있는 정신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고 답했다.

키루이는 “마라톤은 내게 꿈이다. 내 인생의 빛을 밝혀줬다. 4개월간 컨디션 조절을 잘 했기 때문에 이번에 대회 기록(2시간 7분 06초)을 깨며 우승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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