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 선수처럼 꼭 유명한 축구선수가 되고싶어요”

  • 입력 2006년 5월 1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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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선수처럼 꼭 유명한 축구선수가 돼서 친구들한테 자랑할 거예요. 그러면 엄마 아빠도 기뻐하실 테니까요."

경기 성남시에 있는 아동보호시설 '천사의 집'에 살고 있는 박세정(9·여), 승재(8) 남매는 축구선수가 되는 게 꿈이다.

세정이 남매가 천사의 집에 맡겨진 것은 2002년. 아버지는 카드 빚 5000만 원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어머니는 6개월 뒤 자식을 백화점에 두고 사라졌다. 세정이 남매는 부모님이 돈을 벌기 위해 멀리 떠나있는 줄로만 안다. 이들 남매는 서로 학용품을 챙겨주는 등 우애가 좋다.

원래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세정이가 축구의 재미에 흠뻑 빠져든 것은 매일 축구공과 함께 사는 동생 승재(8) 때문. 이들 남매는 함께 팀을 이뤄 친구들과 시합을 하면 백전백승이다. 이들은 유명한 축구선수가 돼서 부모님을 자랑스럽게 하고 싶단다.

세정이 남매가 30일 축구선수가 되고 싶은 꿈을 이뤘다. 한국야쿠르트 '사랑의 손길펴기회'가 후원하고 본보와 한국메이크어위시(Make-A-Wish)재단이 함께한 "꿈은 이루어진다" 행사의 일환으로 프로축구 성남 일화의 명예축구단원이 된 것.

세정이 남매와 함께 명예 축구단원 된 아이들은 모두 24명. 이들은 광주,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경기 성남시 성남 제2종합운동장에 모였다. 축구화와 축구공, 운동복을 선물 받은 어린 선수들은 발로, 머리로 공을 주고받으며 운동장으로 뛰쳐나가고 싶어 발을 굴렀다.

2002년부터 백혈병을 앓고 있는 유진하(8) 군도 이날만큼은 병원에서 벗어나 멋진 축구선수가 됐다. 4살 때부터 병원에 입원해 힘든 치료를 받느라 또래보다 한 뼘은 키가 작지만 친구들에게 지지 않으려는 듯 열심히 뛰어다녔다.

진하의 어머니 김미향(38) 씨는 "축구를 하고 싶어도 몸이 아파 뛰지 못해 늘 답답해했는데 힘든 줄도 모르고 친구들과 씩씩하게 어울리는 것을 보니 대견스럽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중학교 2학년생 황광일(14) 군도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 당산서중학교 축구팀의 주전 선수였던 광일이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지난해 여름 축구를 그만뒀다. 계속 밀린 전지 훈련비와 합숙비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

하지만 광일이는 집에서 밤마다 공과 씨름하며 축구선수의 꿈을 키우고 있다.

"저한테 축구는 심장 다음으로 중요한 거에요. 당장 시합에는 나가지는 못하지만 지금도 매일 1~2시간씩 축구 연습을 해요. 나중에 꼭 국가대표 선수가 될 테니 지켜보세요."

광일이는 선물 받은 축구공을 꼭 끌어안았다.

이날 아이들은 전 국가대표 선수였던 성남일화 김도훈 코치로부터 '좋은 축구선수가 되려면'이란 강연을 들은 뒤 이날 오후 3시부터 열린 성남 일화와 FC 서울의 경기에서 선수들의 손을 잡고 경기장에 입장했다.

세정이는 경기가 시작되기 전 시축을 하면서 멋진 슈팅 솜씨를 뽐내기도 했다.

박주영, 백지훈(이상 FC 서울), 우성용, 김두현(이상 성남 일화) 선수와 얘기도 나누고 사인도 받고 싶다던 아이들은 막상 선수들의 손을 잡고 경기장에 입장할 때는 바짝 긴장해 선수들의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아이들은 경기장을 빠져나오며 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모두 국가대표가 되서 월드컵에서 우승할거니까 두고 보세요."

문병기 기자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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