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잡이 나섰다가 납북…지난달 귀환한 고명섭씨

  • 입력 2005년 9월 1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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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납북됐다가 지난달 귀환한 고명섭 씨가 9일 국회에서 한나라당이 개최한 공청회에 나와 힘들었던 북한 생활을 증언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30년 전 납북됐다가 지난달 귀환한 고명섭 씨가 9일 국회에서 한나라당이 개최한 공청회에 나와 힘들었던 북한 생활을 증언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9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 양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었지만 주름이 깊게 파이고 검게 그을린 얼굴의 한 노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잃어버린 30년’을 회고했다.

1975년 오징어잡이 선박인 천왕호를 타고 33명의 동료와 함께 강원도 주문진항을 출발해 야마토(大和) 해저분지 어장으로 떠난 뒤 강제 납북됐던 고명섭(62) 씨다.

그는 한나라당 김문수(金文洙) 의원이 주최한 ‘납북피해자 지원 특별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에서 납북 이후 북한에서의 생활과 목숨을 건 탈출 과정을 증언했다.

베트남전 참전용사이기도 한 고 씨는 “선박의 기관 고장으로 표류하던 중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무장한 북한 인민군이 공포탄을 쏘며 천왕호를 북한으로 끌고 갔다”며 “인도적 차원에서 귀국시켜 달라고 호소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 후 1년간 원산의 62연락소에서 북한 사회 적응을 위한 정신교육을 받은 고 씨는 평안남도 성천군의 ‘닭목장(양계장)’에 배치 받아 줄곧 노동자로 생활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배급식량도 끊긴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기아(飢餓)와 싸움을 벌이던 그는 2005년 3월 중국을 통한 탈북을 결심했다. 하지만 자신의 탈출을 도운 것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납북자 가족모임이었다고 그는 술회했다.

고 씨는 “국가 보호를 받아야 할 생업의 현장에서 납북된 나는 탈북자가 아니다”며 “이제 대한민국에 돌아온 저의 현실이 단순한 북한 이탈 주민보다 못한 처지인 것을 알았을 때 너무도 허탈했다”고 말했다.

냉전이 한창일 때 정부가 강제 납북자들을 월북자로 보고 남아 있는 가족에게 ‘죄인’ 취급을 했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는 것.

울먹거리기 시작한 고 씨는 마지막 소원을 얘기했다. “납북자들은 어떤 이념과 상관없이 국가의 방치 속에서 인권이 짓밟힌 피해자들이다. 북한에 생존해 있는 납북자들이 귀환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힘써 주고 한국에 남아 있는 납북자 가족에 대해 배려해 달라.”

이날 공청회에 참석한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는 “국군포로와 납북자의 생사 확인이나 송환 등 인도적 요구를 북측에 할 권리가 있다”며 “이번 정기국회에서 납북 피해자를 위한 특별법이 통과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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