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층’서 근무하는 직장인 3人의 ‘구름속 이야기’

  • 입력 2005년 5월 10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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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높은 빌딩엔 누가 있을까.’ 어렸을 때 한 번쯤은 가졌을 만한 궁금증이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63빌딩(249m),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228m), 강남구 역삼동 스타타워 빌딩(204m)은 국내에서 가장 높은 사무용 빌딩들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고층빌딩족(族)’들은 어떤 느낌을 가질까. 3명을 만나 ‘구름 속에서 사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 249m 63빌딩

지하 3층, 지상 60층짜리 63빌딩은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고층빌딩. ㈜63시티 과장인 유순모(劉順模·40·사진) 씨는 59층에 있는 레스토랑 ‘구름 위의 산책(Walking on the cloud)’에서 일한 지 15년 됐다.

그는 “고층빌딩 생활이 아주 즐겁다”고 말했다.

“1년에 다섯 차례 정도 정말 깨끗한 날씨가 있습니다. 그때 창 밖으로 전경을 보면 마음이 뻥 뚫릴 만큼 상쾌하죠.”

불편한 점은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느끼는 기압차이로 귀가 멍해진다는 것. 실제로 기자가 분당 540m 속도인 63빌딩 고층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59층에서 ‘논스톱’으로 내려가니 귀가 막혀버렸다. 63빌딩에선 2002년부터 매년 계단 오르기 대회가 열린다. 올해 우승자는 1층에서 꼭대기까지 계단으로 오르는 데 7분 47초 걸렸다.

유 씨도 한 번은 계단 내려가기를 시도해 봤다. 14분 정도 걸렸는데 다리가 아파 며칠 동안 고생했단다.

● 228m 무역센터

무역센터(52층) 45층에서 일하는 주한미국상공회의소 대외협력팀 이민선(李旻宣·27·사진) 차장은 변비 증상이 있다. 그는 “여직원 16명 가운데 3분의 1 정도가 같은 증상이 있다”며 “의학적으로는 모르겠으나 아마 고층이기 때문에 압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 같다”며 웃었다.

이 차장은 “창문이 안 열려 환기가 잘 안 되기 때문에 여직원들이 ‘화장이 안 먹는다’고 불평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진기한 경험도 많다.

“1년에 한두 번 헬리콥터의 프로펠러 머리를 볼 때가 있어요. 인근 호텔 착륙지가 무역센터보다 낮거든요.”

그는 “야경도 끝내준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런 즐거움도 있어요. 밤늦게까지 야근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데 퇴근길에 꽉 막힌 차들을 보면서 희열을 느낀다니까요. 너무 못됐나? 호호호.”

그는 2년 전 소방대피훈련을 하는데 45층에서 1층까지 30여 분간 내려가느라 거의 탈진했다고 귀띔했다.

● 204m 스타타워

“오정아. 현재 교통상황이 어떻게 되니?”

외국담배회사 BAT코리아의 권오정(權五靜·사진) 마케팅 차장은 친구들로부터 수시로 이런 전화를 받는다. “아예 교통통신원이라니까요, 글쎄.”

BAT코리아는 지난해 스타타워 꼭대기(43층)로 입주하면서 ‘세계의 정상(Top of the world)’이라는 테마로 사무실 인테리어를 꾸몄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의 20층짜리 빌딩에서 이곳으로 사무실을 옮기면서 권 차장은 “고속 엘리베이터 때문에 일주일 정도 어지러워 고생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카이라운지 같은 사무실 분위기 때문에 이젠 출근하는 게 즐겁다. 희한한 경험도 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가끔 창문을 보면 구름이 사무실 옆에 걸쳐 있기도 하거든요. 사무실에서 밖을 볼 때는 분명히 날씨가 좋았는데 1층에 내려가니 구름 때문에 컴컴하고 잔뜩 흐려서 얼마나 놀랐던지…. 재미있죠?”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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