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지원위해 내한 ‘다이빙 황제’ 새미 리

  • 입력 2003년 6월 11일 18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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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지원을 위해 한국을 찾은 재미 올림픽 영웅 새미 리가 11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전영한기자
강원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지원을 위해 한국을 찾은 재미 올림픽 영웅 새미 리가 11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전영한기자
한국계 미국인 올림픽 영웅 새미 리(82)가 고국에 왔다. 강원 평창군의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활동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한국은 유일한 분단국가로 평화와 화합을 강조하는 올림픽 정신에 꼭 부합되는 나라입니다. 평창을 둘러본 뒤 유치 지원을 위해 이 한 몸을 바치겠습니다.”

11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그는 “우리는 불가능하다던 88년 서울올림픽 유치에도 성공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도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지난해 11월 작고한 손기정옹이 1936년 베를린에서 첫 올림픽 금메달을 안겼다면 한국계 미국인인 새미 리는 48년 런던올림픽과 52년 헬싱키올림픽 다이빙 10m 플랫폼에서 2연패의 위업을 이룬 최초의 아시아인이다.

은퇴 후 선수 양성에도 힘을 쓴 그는 60년 로마와 64년 도쿄에서 금메달을 딴 밥 웹스터, 84년 로스앤젤레스와 88년 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그레그 루가니스 등 수많은 스타를 키워냈다. 루가니스는 88년 남자 스프링보드 예선에서 다이빙 보드에 머리를 부딪쳐 다섯 바늘을 꿰매고도 놀라운 투혼으로 금메달을 따내 갈채를 받았던 ‘다이빙 황제’.

새미 리는 “이민 2세대로 미국에서 태어나 비록 국적은 미국이지만 단 한번도 마음의 조국인 한국을 잊은 적이 없다. 30세를 전후한 나이에 올림픽 2연패에 성공한 것은 고추장의 힘”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포츠뿐 아니라 학교 성적도 우등을 단 한번도 놓치지 않았다. 로스앤젤레스 프랭클린고교 재학 때 사상 처음으로 비백인계 학생회장으로 당선됐고 47년 남캘리포니아대학을 졸업한 뒤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됐다. 이후 그는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한인으로 아이젠하워 시절부터 줄곧 대통령 올림픽 자문위원을 맡는 등 스포츠 행정과 외교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48년 런던올림픽부터 지금까지 단 두 번을 빼고는 모든 하계올림픽에 선수나 임원, 자문위원으로 참가했습니다. 그러나 동계올림픽은 한번도 참가한 적이 없습니다. 8년 후 한국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을 보고 싶은 게 마지막 소원입니다. 그러려면 오래 살아야지요.”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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