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복을 빕니다]조중훈 한진그룹 회장

  • 입력 2002년 11월 17일 18시 22분


1982년 7월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가운데)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과 함께 대한항공 부산 사업본부를 방문해 공장 현황에 대해 브리핑을 받고 있다.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왼쪽),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오른쪽). - 동아일보 자료사진
1982년 7월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가운데)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과 함께 대한항공 부산 사업본부를 방문해 공장 현황에 대해 브리핑을 받고 있다.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왼쪽),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오른쪽). - 동아일보 자료사진
고(故) 조중훈(趙重勳) 한진그룹 회장은 한평생 수송 외길을 걸어온 한국 수송산업계의 ‘거목’이었다. 광복 후 중고 트럭 1대로 창업한 한진상사를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를 망라한 세계적인 종합 수송 물류 그룹으로 일궈 낸 ‘신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조 회장이 수송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5세 때인 1935년. 부친의 사업 실패로 휘문고보를 중퇴한 조 회장은 경남 진해의 선원학교인 해원양성소에 입학, 수송과 물류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을 쌓는다. 이후 수송선을 타고 일본 중국 홍콩 등지를 떠돌아다니다 25세 때인 45년 11월, 드디어 ‘수송왕’이라는 꿈을 향해 첫발을 내딛는다. 트럭 1대로 인천시 해운동에 물류 회사 ‘한진상사’를 세운 것.

한진상사는 한국전쟁 발발로 24대까지 늘어난 트럭을 모두 징발당하는 등 치명적인 타격을 입지만 탁월한 신용관리로 오히려 전후(戰後) 특수를 누리게 된다. 휴전직후 미군 보급물자 수송 사업을 하면서 운전기사가 빼돌린 군용 겨울 파카를 남대문시장에서 일일이 되사서 미군측에 넘겨주는 성실성을 미군측이 높이 평가, 미군 화물 추가 수송 계약을 체결했던 것.

이 당시 인연은 베트남전 특수로 이어진다. 조 회장과 친했던 주한 미군 고위 장성들이 베트남으로 옮겨가면서 한진이 66년 주월미군 구매처와 하역 및 수송계약을 체결하는 데 결정적 힘이 됐다. 이 계약은 한진이 도약하는 전환점이 됐고 또 오늘날 한진그룹이 형성되는 바탕이 됐다. 한진이 베트남에 진출했다가 군 철수와 함께 용역사업을 마무리할 때까지 약 5년 동안 벌어들인 외화는 모두 1억5000만달러 규모였다. 베트남에서의 경험은 고인에게 ‘신용’과 ‘노력’이라는 경영 이념을 다지게 했다. ‘사업엔 운(運)이 따라야 한다’는 말을 지극히 싫어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이후 시의적절한 판단력과 결단력, 정확한 미래 예측능력, 그리고 노력만이 성공을 보장한다는 그의 신념은 사업장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었다.

신용을 바탕으로 한 베트남에서의 성공은 60년대 한진관광, 동양화재보험, 한국공항, 한일개발 등을 인수하는 계기가 됐다. 69년에는 공기업이었던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해 오늘날의 대한항공으로 키웠다. 대한항공이 출범하던 날 조 회장은 “낚싯대를 열개 스무개 걸쳐 놓는다고 고기가 다 물리는 게 아니다”라는 유명한 말로 수송외길의 집념을 밝히기도 했다.

성장을 거듭하던 한진그룹도 90년대 들어 큰 시련을 겪는다. 대한항공의 잇따른 사고로 조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것. 특히 조 회장의 장남인 조양호(趙亮鎬) 대한항공 회장이 탈세와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는 등 그룹은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그룹 회장으로서 노구를 이끌고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을 막후에서 지휘, 신인도를 회복시켰고 수익성 위주의 내실 경영에 마지막 노력을 기울였다. 한진그룹을 21개 계열사에 연 매출액 15조원의 재계 5위의 반석에 다시 올려놓고 나서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던 것이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송진흡기자 jinhup@donga.com

빈소는 대한항공 빌딩

고(故) 조중훈 회장은 토요일인 16일 오후부터 갑자기 상태가 위독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을 듣고 부인과 장남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등 가족들이 급히 병원으로 달려와 다음날 임종했다.

한진그룹은 조 회장의 장례를 주관할 장례위원회(위원장 황창학 한진㈜ 고문)를 구성해 그룹장으로 치러질 21일의 장례식 준비에 들어갔다.

한진은 빈소를 고인이 별세한 인하대병원에 차리지 않고 서울 서소문 대한항공빌딩 18층으로 옮겨 마련했으며 해외 지점 6곳을 포함한 국내외 15곳에도 간이 빈소를 차려 임직원들이 분향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고인의 시신을 옮겨오는 데 시간이 걸려 조문은 18일부터 받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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