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정치역정]36년간 권력 영욕 넘나든「풍운의 정객」

  • 입력 1997년 6월 24일 19시 52분


자민련 金鍾泌(김종필)총재에게는 「풍운(風雲)의 정치인」 「만년2인자」라는 별명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지난 61년 정계에 뛰어든 이래 그는 권력의 영욕(榮辱)을 넘나들었다. 고 朴正熙(박정희)대통령과 함께 「5.16 거사(擧事)」에 성공한 그는 중앙정보부를 창설, 초대 정보부장에 취임했다. 세상 무서울 것이 없는 자리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5.16 주체세력 내부의 암투과정에서 그는 「자의반(自意半) 타의반(他意半)」 외유를 떠나 8개월동안 38개국을 돌아다녔다. 귀국후 그는 정치를 재개했지만 얼마가지 않아 63년 한일협약에 반대하는 6.3사태가 일어나자 또다시 장기외유에 나서야 했다. 사태가 가라앉자 귀국한 그는 부여에서 7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러나 68년 3선개헌을 반대하는 공화당내 국민복지회 사건으로 또다시 모든 공직을 내놓아야 했다. 그는 71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공화당 부총재로 돌아왔다. 곧이어 국무총리에 취임, 4년6개월간 재임했다. 79년 10.26후 공화당 총재직에 오른 그는 「서울의 봄」을 맞아 金泳三(김영삼) 金大中(김대중)씨와 함께 대선출마를 준비했다. 그러나 80년 5.17이 일어나면서 그는 부정축재자로 몰려 계엄사에 투옥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는 87년 신민주공화당을 창당, 대통령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년여 뒤 3당합당을 거쳐 민자당대표가 된 그는 김영삼씨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또다시 집권 민주계가 자신을 대표직에서 내몰려하자 91년 민자당을 탈당, 자민련을 창당했다. 그는 95년 6.27 지방선거에서 선전을 했고 지난해 4.11총선에서도 50석을 확보, 제2야당의 자리를 굳혔다. 〈이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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