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 우려 키우는 ‘밀어붙이기식’ 사관학교 통합[윤상호 군사전문기자의 국방이야기]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6월 29일 23시 00분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올해 2월 20일 충남 계룡대 대연병장에서 열린 육해공군사관학교 통합 임관식에서 신임 장교들과 악수하고 있다. 계룡=청와대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올해 2월 20일 충남 계룡대 대연병장에서 열린 육해공군사관학교 통합 임관식에서 신임 장교들과 악수하고 있다. 계룡=청와대사진기자단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국방부의 육해공군사관학교 통합 작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국방부는 4월 사관학교 통합 방안을 전담하는 태스크포스(TF)를 꾸린 데 이어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최근까지 “미래전 대비와 합동성 강화를 위해 사관학교 통합이 필요하다”며 추진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사관학교 통합을 대선 공약이자 국정 과제로 제시한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달 28일 사관학교 통합을 “과감하고 신속하게 추진해 달라”고 주문했다. 국방부는 조만간 국군사관학교 창설 계획을 발표하고 법령 개정 작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3군 사관학교 생도들을 통합 선발해 1·2학년은 함께 공통 교육을, 3·4학년은 군별 특화 전공 교육을 받도록 하는 구상이다. 이 과정에서 서울 노원구 태릉에 있는 육사의 전남 장성 이전 가능성도 거론된다.

하지만 군 안팎에선 사관학교 통합이 ‘속도전’ 양상으로 전개된다는 지적이 많다. 국군의 미래를 책임질 핵심 장교 양성 체계를 바꾸는 중대 사안을 단기간에 결론 내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관학교 통합은 교육기관 구조조정이나 행정 효율화 차원을 넘어 국가안보의 근간을 이루는 장교 양성 체계와 각 군의 정체성과 전문성 등을 새롭게 설계하는 안보 대계 차원의 문제다. 개혁의 필요성이 크다고 해서 절차적 정당성과 충분한 검증을 소홀히 하는 밀어붙이기식 추진은 재고돼야 한다고 필자는 본다.

무엇보다 사관학교는 일반 대학과 다르다. 단순히 학위를 수여하는 교육기관이 아니라 각 군의 정신과 전통, 작전 문화를 계승하는 핵심 장교 양성기관이다. 육군은 지상전과 병참, 해군은 해양전략과 함정 운용, 공군은 공중우세와 항공작전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전장 환경과 임무가 다른 만큼 요구되는 리더십과 교육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다. 미국 등 주요 군사 강국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합동작전 체계를 구축하면서도 각군 사관학교를 별도로 유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합동성은 전문성을 없애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전문성을 연결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점을 보여 준다.

다수 예비역과 군사 전문가들도 “합동성은 교육기관 통합의 결과가 아니라 군 구조와 지휘체계, 작전개념, 장교 전문성이 결합된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장교 양성 체계의 핵심 과제는 각 군의 전문성을 강화하면서도 합동작전 능력을 높이는 것이지, 조직을 물리적으로 합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사관학교 출신은 전체 장교의 일부에 불과한데 다른 장교 양성 체계 개편 없이 사관학교만 합치는 것은 정책적 정합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논의 과정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사관학교 통합 작업의 이면에 12·3 비상계엄의 여파로 인한 정치적 외력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상계엄을 주도한 특정군과 특정 출신의 폐쇄적 문화를 해체하려는 것이 통합의 주된 목적이라는 것이다. 역사적 과오를 저지른 군의 개혁과 혁신의 필요성에는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특정 사건이나 정치적 논란을 계기로 수십 년간 유지돼 온 장교 양성 체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안보 정책은 정권의 이해관계나 정치적 상징성보다 국가 생존이라는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지만 군이 준비하는 전쟁은 20년, 30년 뒤를 내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관학교 통합이 실제로 어떤 효과를 낼지에 대한 객관적 검증도 아직 충분치 않은 게 사실이다. 통합이 합동성을 강화하기보다 전문성 약화와 우수 인재 유치 저하, 교육 효율성 감소 등 부작용과 후유증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통합사관학교의 캠퍼스 위치와 교육 과정 설계, 지휘 체계 정비, 교수진 구성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그럼에도 정책 추진 일정만 앞세워 서두른다면 군 조직 전체에 불필요한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관학교는 대한민국 국군의 미래를 책임질 핵심 장교를 길러내는 안보 대계의 근간이라는 점에서 개혁 과정은 신중하고 투명하게 진행돼야 한다. 그 반대 경로를 택할 경우 자칫 졸속 개편과 전력 약화라는 후과를 남길 수 있다.

사관학교 통합 논의는 정치적 의도를 최대한 배제하고, 군사교육 전문가와 현역 군인, 예비역, 학계, 국민이 참여하는 폭넓은 공론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충분한 연구와 시범 검증, 국회 논의와 국민적 공감대 형성도 필수적이다. 그래야 국가안보와 국방태세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통합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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