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간쑤(甘肅)성의 톈수이(天水)현은 제갈량이 북벌을 추진할 때 최우선적인 전략 목표였다. 그래서인지 그 지역에는 삼국지와 관련된 유적, 기념물이 곳곳에 있다. 그 덕에 주목을 덜 받는 유적이 있는데, 한나라가 흉노와 벌인 전쟁의 영웅 이광의 묘다.
이광은 진나라의 명장 이신의 후손이라고 하지만, 한나라가 건국한 뒤에는 변방인에 불과했다. 변경 지역에서 장수가 되어 빛나는 전공을 세우며 승승장구했다. 그는 무용도 뛰어났지만, 진정한 야전형·실전형 장수였다. 부하들을 잘 다루고 잘 키워냈지만, 동시에 겸손하고 수수했다고 한다.
전투에서 세운 탁월한 공로에도 불구하고 이광에게는 출세운이 늘 비껴갔다. 결국 이광은 억울하게 죽는데 그의 불운은 아들, 손자에게까지 이어졌다. 손자 이릉은 천하의 용장이었지만, 선두로 진격했다가 적진에 버려졌다. 분노한 그는 흉노에게 투항하는데, 한무제는 이릉의 가족과 친구들을 몰살했다.
사마천도 이릉을 변호하다가 치욕적인 궁형(거세형)을 당했다. 사마천은 이광과 이릉의 이야기를 자세히 남겼다. 그런데 이 3대에 걸친 불운의 원인에 대해서는 지독히도 운이 비껴가는 사람이라는 해석, 과거에 강족 포로를 학살한 죄의 응보라는 해석 등 여러 해석이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그가 권력가와 줄이 닿지 않고 한나라 조정에서 차별받을 수밖에 없는 변방인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마천이 이광 집안의 이야기를 남긴 이유에 대해서도 자신이 궁형을 당한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서라는 해석도 있다. 아니다. 능력자를 시기하고, 무능해서 권력자에게 더 아부하며, 자신과 연줄 있는 자만 등용하는 위험성을 경고하려던 것이다. 무능한 자가 인연, 수, 선동으로 능력자를 배척할 때 모든 권력은 필연적으로 타락한다. 그러한 조직은 반드시 썩는다. 국가와 사회는 늪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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