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우경임]서울 광장시장 노점 실명제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5월 17일 23시 18분


멸치 육수에 펄펄 끓여낸 칼국수, 기름에 튀기듯이 부쳐낸 녹두전, 겨자에 찍어 먹는 한입 크기 김밥…. 외국인 관광객이 서울 종로5가 광장시장을 찾아 상인과 일꾼들의 허기를 달래던 서민 음식을 먹기 위해 줄을 서기 시작한 건 2019년 넷플릭스에서 아시아의 길거리 음식을 소개한 다음부터다. 광장시장 노점 요리사들의 ‘희로애락’이 버무려진 맛깔난 음식 영상을 보고 한국 방문 시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저장됐다. 요즘은 가볍고 따뜻한 이불이 한국 쇼핑 ‘필수템’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이불집들이 붐빈다.

▷어른 세대가 장을 보러 가서 드센 흥정을 하는 곳으로 익숙했던 광장시장은 외국인의 시선으로 재발견된 곳이다. 한 끼 대충 때우는 음식이 싸고 푸짐한 음식으로, 시끌벅적한 활기가 시장의 바이브로, 즉석조리가 손맛으로, 불편한 포장마차 좌석이 민주적인 공간으로 해석된다. 외국인 관광객에 이어 젊은 세대가 광장시장을 궁금해하고 찾기 시작하면서 요즘은 성수동 못지않게 ‘힙’한 장소가 됐다. 스타벅스, 올리브영에 이어 K패션 브랜드인 마뗑킴, 코닥어패럴 등이 들어섰다.

▷광장시장의 인프라와 주 고객이 바뀌었지만, 아직 그에 걸맞은 상도덕이 정착되진 않은 것 같다. 상인들의 불친절과 바가지요금이 끊임없이 논란이 된다. 곁가지 반찬으로 줄 만한 양의 모둠전을 1만5000원에 판 전집, 고기만두를 시켰는데 두 배 값의 모둠만두를 건넨 만둣집, 외국인에게만 비싼 가격제를 운용한 순댓집이나 물값을 2000원 따로 받은 분식집 등이 공분을 샀다. 최근에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음료 컵 속 얼음을 씻어 재사용한 것이 적발돼 불량한 위생도 논란이 됐다.

▷서울 종로구는 해당 사고마다 과태료, 영업정지 같은 행정처분을 내렸고 상인회는 자정을 다짐했지만 잊을 만하면 사고가 터지곤 했다. 광장시장 노점상은 지난해 11월 도로법에 따라 점용 허가를 처음 부여받았다. 그 이전까지는 사실상 제도권에 편입되지 않은 영업이었던 셈이다. 정식으로 허가받고 영업하던 일반 점포 상인들은 유튜브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노점의 상식 밖 영업 행태가 논란이 되면서 피해를 봤다는 불만이 컸다.

▷종로구는 다음 달부터 노점 실명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노점 실명제는 바가지 판매나 음식 재사용 등 불법 영업으로 적발된 노점상에 대해 영업정지와 벌점을 부과하고, 1년간 4회 이상 위반하거나 벌점이 120점을 넘으면 영구 퇴출하도록 한 것이다. 광장시장은 1905년 조선인 자본으로 설립된 조선 최초 민간 시장이다. 6·25전쟁 당시 폐허가 됐다가 재건돼 한때 전국 물류망의 중심 역할을 했다. 이젠 전통과 가치를 재평가받아 관광 명소로 떠올랐다. 광장시장이 그 역사성에 어울리는 시장 문화를 만들어 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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