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문 닫은 사춘기 자녀… 달라져야 할 부모의 대화법[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5월 17일 23시 00분


〈240〉 나이 따라 다른 대화 물꼬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사춘기 아이들은 “얘기 좀 하자”라는 말을 싫어한다. 부모와 관계가 이미 많이 틀어져 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 시기 아이와의 대화는 정말 중요하다.

어떻게 아이와 대화를 시작해야 할까? 아이의 연령별로 좀 달리해야 한다. 사춘기가 일찍 왔지만 아직 초등학생들은 부모가 자신을 차갑게 대하면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시기 아이들이 부모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좀 더 따뜻하고 다정하게 대해 줬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초등학생과의 대화에서는 먹을 것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나는 초등학생을 상담할 때 먼저 “너 뭐 먹을래? 배고프지 않니?”라고 물어보곤 한다. 아무리 아이가 부모에게 억지로 끌려와서 기분이 좋지 않아도 먹을 것을 제안하면 대부분 마다하지 않는다. 퉁명스럽게라도 “뭐 있는데요?” 하고 묻는다. 그다음부터는 훨씬 편하게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어느 정도 마음의 경계가 풀리기 때문이다. 부모도 아이와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미리 준비해 둔다면 자연스럽게 아이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간식을 권해도 안 먹는다고 할 수도 있다. 주스를 먹겠느냐고 물었는데 싫다고 한다. 그럴 때는 “나중에 목마르면 얘기해. 나 혼자 마시면 너한테 미안하잖아” 하면서 먼저 긴장을 푸는 모습을 보여준다. 언젠가는 젤리를 건넸는데 “저는 젤리 안 먹어요”라고 한 적이 있었다. 어떤 아이는 살찔까 봐 안 먹는다고 했다. “아, 너 살이 찔까 봐서 걱정이구나” 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갔다. “이에 붙어서 싫어요” 하고 대답하는 아이도 있었다. “아, 너는 찐득한 게 이에 닿는 느낌이 싫구나? 네가 싫어하는 음식이 또 뭐가 있어?”라며 아이가 조금씩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게 유도했다. 그러면서 “사실 나도 어릴 때는 엄청 편식했었어” 하고 내 이야기를 하면서 좀 더 친근감을 느끼게 해줬다.

초등학생과 상담할 때 종종 퀴즈를 내기도 한다. “이번에는 네가 내 봐. 내가 맞힐게” 하고 순번을 바꾸기도 한다. 어떤 아이들은 “이런 걸 대체 여기서 왜 해야 하는데요?” 하고 묻기도 한다. 그러면 웃으면서 “너랑 친해지고 싶어서 그렇지. 티 났니?” 하고 솔직하게 말한다. 아이들도 대개 웃음으로 답한다.

반면 중학생 이상은 좀 다르다. 아이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닫고 말을 안 할 때, 나는 “사람은 완벽하지 않아.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는 문제가 있고, 개선할 점이 있는 거야. 그런데 뭘 고쳐야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은 살면서 더 힘들 때가 많지” 하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면 아이가 “엄마가 문제예요” 하고 말을 시작하기도 한다. “그렇지. 엄마도 문제일 수 있지. 네가 보기에 엄마는 뭐가 문제인 것 같으니?”라고 물으면 자기 말을 도통 들어주질 않아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대답하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 네가 여기 온 거야. 그걸 원장님이 너희 엄마한테 얘기를 해주는 게 훨씬 낫거든. 그러려면 네가 나한테 얘기를 해줘야 해. 나도 최선을 다해 네 이야기를 들을 거야”라고 한다. 직접적으로 솔직하게 말하면 절대 입을 열 것 같지 않던 아이도 조금씩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 시기 아이들에게 말을 걸 때는 무엇보다 부모가 자신의 진솔한 마음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좋다. “사실 나한테도 어느 정도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네가 그럴 때 엄마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거든. 어떻게 하는 게 너를 돕는 길인지 모르겠어” 하고 솔직하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이다. 가령, 아이가 매일 해야 하는 일이 있다고 치자. 부모는 당연히 아이가 알아서 했을 거라 물었는데 아이는 하라는 말도 안 해놓고 뭐라고 한다고 툴툴댄다. 그러면 “어머, 내가 그거 매일 해야 하는 거라고 말 안 했니? 나이가 드니 자꾸 깜빡깜빡하네. 대신 내일은 꼭 해” 하고 먼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면 된다.

분명 말을 했는데 안 해줬다고 우길 때도 있다. 그럴 때는 “그래? 못 들었어?” 하고 일단 아이의 말을 받아들여 준다. 아이 입장에서는 정말 못 들었을 수도 있다. 그다음 “나는 똑똑히 기억하는데…. 다음엔 중요한 게 있을 때 목소리를 좀 더 크게 해야겠다. 그래야 네가 좀 집중해서 듣지”라고 마무리한다. 그럴 때 “야, 내가 분명히 말했는데 왜 못 들어?” 하면서 버럭 화를 내면 아이는 부모와는 대화가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음부터는 아예 대화 자체를 거부할 수 있다. 무조건 자신을 권위로 억누르려는 대상에게는 누구나 반감부터 생기기 때문이다.

사춘기는 누구나 거치는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는 데 많은 기틀이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이다. 이 시기 아이와의 대화는 많은 것을 가르쳐줘야 하기 때문에 정말 중요하다. 단, 대화가 그 중요한 기능을 해내려면 아이와의 일정한 거리는 잘 지켜져야 한다. 그것이 사춘기라는 정상적인 발달 단계를 잘 밟아가고 있는 아이에 대한 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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