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구 모나리자의 화려한 외출[김민의 영감 한 스푼]

  • 동아일보

일본 오는 ‘진주 귀걸이 소녀’

얀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1665년). 1990∼2000년대 미국에서 소설과 영화로 재창작되며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제공
얀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1665년). 1990∼2000년대 미국에서 소설과 영화로 재창작되며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제공
김민 문화부 기자
김민 문화부 기자
연초가 되면 주요 미술관들은 예정 전시를 발표하기에 바쁩니다. 올해에도 라파엘로(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세잔(스위스 바이엘러재단 미술관), 마티스(프랑스 파리 그랑팔레), 프리다 칼로(영국 테이트모던) 등 유명 작가들의 전시가 관객을 기다리는 가운데, 아시아 애호가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소식은 의외의 곳에서 들려왔습니다.

바로 일본의 미술관에서 여름에 예정된 한 전시입니다. 심지어 도쿄도 아닌 오사카에 있는 나카노시마 미술관에서 열리며, 단 한 달만 이어질 예정입니다. 그런데 벌써부터 국내에서도 오사카행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단 얘기까지 들립니다. 그 이유는 “북구의 모나리자”, 얀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오기 때문입니다.

베일에 싸인 미인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페르메이르가 33세인 1665년경에 그린 인물화입니다. 어두운 배경 앞에 선 여성이 고개를 돌려 관객을 바라보고 있고, 푸른 빛의 터번을 쓰고 있으며 커다란 진주 귀걸이를 걸고 있죠. 높이 45cm, 폭 39cm의 작은 그림으로, 내용은 단순하지만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림 속 여성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우선 이 그림을 그린 페르메이르 역시 알려진 바가 많지 않죠. 그가 그렸다고 확실하게 확인된 작품도 36점에 불과합니다. 살아 있을 때엔 지역에서 유명한 화가 정도였고, 사후에는 잊혀졌습니다. 그런데 19세기 프랑스 평론가 테오필 토레뷔르거가 발굴하고 작품을 연구하며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그러다가 1995년 미국 워싱턴DC 내셔널갤러리에서 페르메이르 회고전이 열립니다. 이때 미 관객들에게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주목을 받기 시작합니다. 이후 1999년 소설가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이 작품을 보고 상상력을 발휘해 같은 제목의 소설을 썼습니다. 2003년 배우 콜린 퍼스와 스칼릿 조핸슨이 출연한 동명의 영화까지 만들어지며 이 그림은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게 됐죠.

그림이 큰 주목을 받으면서 여러 연구도 이뤄졌습니다. 원래는 배경에 녹색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거나, 그림의 안료로 천연 광물인 라피스 라줄리로 만든 고급 물감인 ‘울트라마린’이 쓰였다는 분석 결과도 나왔습니다. 정설은 아니지만 그림 속 여성이 초상화를 의뢰한 후원자의 딸일 수 있다는 가설도 제기됐죠.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실재의 인물이 아니라 상상 속의 인물을 그려낸 ‘트로니’라는 의견이 더 많이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조핸슨만큼 사람들에게 이 작품을 뚜렷하게 각인시킨 것은 없을 겁니다. 뽀얗고 커다란 귀걸이를 달고, 울트라 마린색의 천을 두른 채 고개를 돌려 카메라를 응시하는 장면 말입니다. 작품에 대해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보니, 마음대로 소설도 쓰고 영화도 만들도록 상상의 나래를 열어 주는 다양한 이야기의 원천이 돼 준 셈입니다.

14년 만에 일본 방문

이 그림은 인물이 누구이고 왜 그렸는지 등 작품에 관한 사실과 정보가 아니라, 분위기와 이미지가 엄청난 파급력을 자아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할리우드 영화 덕에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한 번쯤 들어본 사람도 많죠. ‘내가 아는 그 작품’이 가까운 곳에 온다고 하니 ‘실제로 보러 가볼까’ 하는 마음이 들게도 합니다. 이렇게 ‘아는 작품’의 파급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14년 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미국·일본 순회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네덜란드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 소장돼 있고, 미술관 대표작이다 보니 외부로 반출된 적이 거의 없습니다. 2023년 암스테르담 레이크스 미술관에서 페르메이르 회고전이 열릴 때 잠시 떠난 적이 있지만, 그건 네덜란드 국경 안에서의 이동이었죠.

14년 만에 다시 아시아를 찾는데, 또 일본인 이유는 지난 전시가 큰 성공을 거뒀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일본과 미국을 돌며 전시했는데, 도쿄도립미술관과 고베시립미술관에 이어 미 샌프란시스코, 애틀랜타, 뉴욕으로 2년간 투어를 다녔습니다. 이때 전체 관람객이 220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도쿄와 고베에서만 약 120만 명이 방문했죠.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은 당시 문을 닫고 전면 확장 및 리모델링에 나섰습니다. 대표 작품인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미일 순회전에 보낸 덕에, 전시 수익으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네덜란드 밖에서 전시가 가능했던 것도 미술관이 일부 전시관을 닫고 리모델링을 진행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전시 기간이 8∼9월로 다소 짧습니다.

즉 일본인의 유별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 대한 사랑이 어쩌면 이런 이례적인 전시가 가능하게 만든 건 아닐까요. 실제로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측은 “매년 수천 명의 일본인이 이 작품을 보기 위해 네덜란드를 찾는다”며 “이번이 일본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작품 외에도 렘브란트를 비롯한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 회화도 전시될 예정이나, 자세한 구성은 2월 말 발표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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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페르메이르#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나카노시마 미술관#일본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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