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를 받아보면 물건을 샀는지, 상자를 샀는지 헷갈릴 정도다. 반창고와 양념이 떨어져 묶어 주문했는데 반창고 한 개, 양념 한 개가 각각 가로세로 족히 30cm 되는 택배 상자에 따로 배달됐다. 공책 5권을 시켰는데 택배 5개가 도착해 식겁한 적도 있다. 식품 포장은 더 심각하다. 이른바 ‘뽁뽁이’라는 완충재로 말고, 보랭팩을 여럿 넣고, 다시 비닐 충전재를 넣어 상자에 담아 보낸다. 냉동, 냉장, 상온 보관 식품을 각각 다른 상자에 담아 보내기 때문에 재활용 쓰레기 처리에 여간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니다. 택배를 줄여야겠다고 결심해 보지만 그 편리함에 번번이 지고 만다.
▷기업으로선 상품이 손상돼서 반품을 받느니 포장을 많이 하는 것이 비용적으로 낫다. 택배 상자 역시 크기가 다양할수록 구입과 재고 비용, 포장 시간이 늘어난다. 표준 규격으로 설계된 자동화 설비 투자를 늘리거나, 아니면 인력을 더 고용해야 한다. 차량에 실을 때도 상자 크기가 일정하지 않으면 공간 사용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결국 기업으로선 과대 포장이 낭비가 아니라 비용 절감인 셈이다.
▷2023년 한 해 동안 재활용 폐기물 395만 t 가운데 포장 폐기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47.8%로 절반 가까이 된다. 2020년까지만 해도 포장 폐기물의 비중이 30%대였는데 코로나19 유행 동안 온라인 쇼핑이 늘면서 2021년 44.2%, 2022년 45.1%로 급증했다. 실제 아파트 단지 내 재활용 분리수거장에 가면 종이 상자, 스티로폼 상자, 뽁뽁이 등 택배 포장이 정말 무덤처럼 쌓여 있다.
▷정부는 2022년 4월 택배 과대 포장 규제를 도입했다. 포장 횟수는 1회로 하고, 택배 상자의 빈 공간이 50% 이하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원래 2년 유예 기간을 거쳐 2024년 시행될 예정이었는데 돌연 자발적 참여를 유도한다며 내년 4월까지 계도 기간을 뒀다. 대상 제품이 1000만 종 이상이고, 연간 60억 개에 달하는 택배 상자를 일일이 검사하는 게 어렵다는 이유였다. 규제 도입 당시에도 익히 짐작할 수 있는 문제였다. 3년이 지나도록 정부, 기업이 제도 시행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정부는 최근 일회용컵 따로 계산제, 빨대 제공 중단 등의 내용이 담긴 ‘탈플라스틱 로드맵’을 발표했다. 하지만 전체 폐기물 가운데 가정에서 배출하는 생활폐기물은 12%밖에 되지 않는다. 더욱이 상품 포장이나 택배 포장에서 발생하는 생활폐기물은 개인이 줄이려고 해봐야 방법도 없다. 이러니 “만만한 소비자만 규제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정책 순응도가 낮아진다. 유럽연합(EU)이나 일본은 생산자 규제로 방향을 틀었다. 생산 단계에서부터 과대 포장을 줄이지 않으면 지구가 쓰레기 더미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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