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에도 전남 순천만 하늘은 흑두루미(천연기념물 제228호·사진)의 힘찬 날갯짓으로 채워졌습니다. 매년 흑두루미 수천 마리가 이곳에서 긴 이동을 마치고 쉼을 얻습니다. 올해는 특히 눈에 띄게 개체 수가 늘었습니다. 지역사회의 보전 노력 덕분입니다.
순천시는 철새들의 안전한 이동을 위해 전봇대 수백 개와 약 12km에 이르는 전선을 철거하고, 수확을 마친 논을 흑두루미의 먹이 터로 그대로 남겨 두었습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12월 ‘이달의 생태관광지’로 충남 서산시 천수만 철새도래지를 선정했습니다. 서산 천수만 철새도래지는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만들어진 넓은 농경지와 담수호, 갈대밭이 어우러져 철새들의 서식에 최적화된 지역입니다. 천수만 일대에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 황새와 고니, 2급인 흑두루미 등이 서식합니다.
철새 보전은 자연과 인간이 서로의 터전을 존중하며 공존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입니다. ‘새 박사’로 불린 윤무부 박사(1941∼2025)는 한평생 그 답을 찾아온 인물이었습니다.
경남 통영에서 태어난 윤 박사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바다와 배를 접하며 자랐습니다. 그때 들었던 새 이야기가 그의 마음에 자연스럽게 씨앗처럼 자리 잡았고, 훗날 경희대 생물학과에 진학하는 계기가 됩니다.
대학 시절부터 전국에서 자연상태의 새를 관찰하는 ‘탐조’ 활동에 몰두하며 조류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한국에 사는 휘파람새의 지리적 변이’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에는 모교에서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오로지 새만 연구합니다.
윤 박사의 진짜 가치는 연구실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는 TV 프로그램 해설과 방송 출연을 통해 ‘새 박사’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집니다. 윤 박사는 2006년 탐조 활동 중 뇌경색으로 쓰러졌습니다. 오랜 재활 끝에 전동 휠체어에 의존해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다시 전국의 철새 도래지를 찾아 나서는 열정을 보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올해 8월 뇌경색 재발로 박사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올해도 순천만 하늘을 가득 메운 흑두루미의 비상을 보며 그의 삶이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를 떠올립니다. 인간이 자연을 위해 한발 물러설 때, 자연은 다시 제자리에서 날아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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