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기용]지도를 달라는 구글의 요구가 마뜩잖은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5월 15일 23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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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용 산업2부장
김기용 산업2부장
미국 초거대기업 구글이 한국 정부에 고정밀 지도를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2007년, 2016년에 이어 세 번째다. 실제 거리 5000㎝(50m)를 지도에 1㎝로 표시하는 1:5000 지도를 해외로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고정밀 지도는 국가 중요 자원이기 때문에 해외로 반출하려면 정부 허가가 필요하다. 국토교통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외교부·통일부·국방부·행정안전부·산업통상자원부·국가정보원 등 8개 부처가 참여하는 협의체에서 만장일치로 결정해야 한다. 협의체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과거 두 차례 구글의 요구를 모두 거부했다. 14일 열린 회의에서는 최종 결정을 8월로 연기했다.

美정부 등에 업은 구글의 지도 반출 요구


협의체가 구글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하고 ‘연기’를 결정한 것은 상황이 복잡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구글은 지도상에 중요 보안시설을 가림(블러) 처리하라는 한국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를 수용하면서 한발 물러섰다. ‘국가 안보’ 문제를 희석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여기에 미국 정부도 가세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3월 한국의 지도 반출 제한을 대표적인 ‘비관세 장벽’으로 지적하면서 이 사안을 ‘국가 안보’가 아닌 ‘통상·외교’ 문제로 치환시켰다. 이 과정에서 국내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국가 안보’를 내세운 정부의 거부 논리가 조선 말기 ‘쇄국 정책’과 비슷하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구글이 한국에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면 문제는 바로 해결된다. 고정밀 지도를 국내에 있는 데이터센터에 보관하면서 사용하는 건 제약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글은 특정 국가 데이터를 특정 국가 데이터센터에만 보관하긴 어렵다는 이유로 데이터센터를 한국에 건설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그들이 얘기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도 있다. 세금 문제다.

한국에 있는 구글코리아는 매출과 납세가 불투명한 측면이 있다. 2023년 10월 한국재무관리학회 보고서에 따르면 구글코리아는 매출 12조 원, 이에 따른 법인세만 5180억 원을 납부해야 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실제 신고된 매출액은 3652억 원, 세금 납부액은 172억 원에 불과했다. 구글코리아 설립 이후 20년간 추산되는 매출은 97조∼242조 원, 추정 법인세는 7.7조∼19.3조 원이라는 조사도 있다.

“한국에서 번 돈 한국에 세금 내야”


국세청은 한국에서 발생한 매출은 모두 구글코리아의 매출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구글코리아는 데이터센터가 싱가포르에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발생한 매출이더라도 싱가포르 소재 구글아시아퍼시픽 매출로 잡아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만약 구글이 한국에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게 되면 자신들의 논리에 따라 막대한 세금을 한국에 내야 하는 것이다.

기업이 돈을 많이 벌고도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지 않거나 심지어 국민·국가와 동반 성장할 의지도 없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외국 기업도 마찬가지다. ‘현지화’가 중요한 이유다. 그런 사회 환원 활동의 기본이자 최소한이 세금 납부다.

구글 정밀 지도 서비스가 가능해지면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 관광객은 편리해질 것이다. 구글도 한국 사업을 성장시킬 수 있다. 하지만 막대한 예산을 들여 구축한 고정밀 지도를 최소한의 사회 환원도 제대로 하지 않는 기업에 내어 준다는 여론이 커지면 한국 정부도 이를 무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글로벌 초거대기업 구글이 한국에 세금 172억 원을 내는 동안 네이버와 카카오는 각각 3902억 원, 1590억 원을 냈다. 그 밖에 다른 사회공헌 활동은 비교할 수도 없다. 한국에서 큰돈을 벌고도 한국에 환원할 생각이 없는 기업이라는 인식은 한국 정부가 아니라 구글 스스로 만든 ‘비관세 장벽’이다. 구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안 하면서 남 탓만 해서는 안 된다.

#구글#고정밀 지도#한국 정부#데이터센터#세금 문제#국가 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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