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축구대표팀의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앞)이 20일 일본 사이타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C조 7차전 바레인과의 경기에서 승리한 뒤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이타마=AP 뉴시스
“월드컵 우승을 하고 싶다.”
일본 축구대표팀의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20일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조별리그 C조 7차전에서 바레인에 2-0으로 승리한 뒤 한 말이다.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이 승리로 6승 1무 무패를 기록하며, 북중미 월드컵 자동 출전권을 지닌 공동개최 3국(미국 캐나다 멕시코)을 제외하고 가장 먼저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한 일본의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감독이 공식적으로 ‘월드컵 우승’을 거론할 만큼 기세가 만만치 않다. 하지메 감독의 이 발언은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 이는 2005년 시작된 일본 축구의 개혁안 속에 담긴 열망을 다시 한번 표출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일본 축구의 개혁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내외적으로 두드러지지 못했던 일본 축구계는 2005년 일본 축구협회 주도로 혁신에 나섰다. ‘일본의 길’로 명명된 축구 개혁안은 ‘축구 가족 1000만 양성’ 및 ‘2050년 월드컵 우승’을 목표로 세우고 그 세부 실행안을 담았다.
일본은 먼저 축구 강국들의 특징을 면밀히 살핀 뒤 그 내용을 일본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큰 그림을 그렸다. 축구 강국들의 축구 선수 및 팬 등 축구 관련 인구가 전체 인구의 7%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축구 저변 및 축구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애정이 없으면 축구 발전이 불가능하다고 해석했다. 그래서 일본은 축구가 하나의 문화로서 생활 전반에 스며들도록 하는 ‘축구의 문화적 가치 향상’을 근본 목표로 세웠다. 어디서나 누구나 즐기고 참여할 수 있는 축구가 됨으로써 그 인구가 확산되면 국민들의 축구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축구 전반에 대한 지지가 높아지고 이를 통해 축구의 ‘화학적 변화’가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이를 위해 일본은 일본 프로축구 J리그와 함께 ‘100년 구상’도 실행 중이다. 이 구상은 축구 시설을 늘리고 전 연령대에 걸쳐 축구 사랑을 확대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축구 철학은 미국을 중심으로 자리 잡은 현대 스포츠의 사회적 기능 및 철학과도 통한다. 스포츠를 통해 자신의 건강과 활력은 물론 협동과 인내심, 패배를 딛고 일어서는 노력 등을 길러주는 것이 현대 스포츠의 큰 기능이다. 미국 주요 기업의 최고 경영자 대부분이 학창 시절 스포츠 활동을 했다는 것은 이러한 스포츠의 순기능을 확인시켜 주는 실증적 사례로 자주 거론된다. 일본 축구는 이러한 스포츠의 기능을 축구로 구현하겠다는 목표의식 아래 움직이고 있다. ‘축구로 국민을 행복하게 한다’는 것이 일본 축구계의 이념이다. 축구 인구 1000만 목표는 그래서 나온 것이다.
일본 축구 개혁안은 치밀하다. 유소년 강화, 자국 리그 강화, 대표팀 강화, 지도자 육성, 축구 문화 확산 등을 골격으로 유소년기, 청소년기 때부터 축구를 재밌게 느끼도록 하고 연령대별로 필요한 각종 훈련 내용 및 세부지침이 빼곡하게 정리된 이 개혁안을 들여다보면 일본이 얼마나 철저히 축구 개혁을 준비했는지 알 수 있다. 현대 축구의 흐름을 면밀한 통계로 분석해 포지션별로 각 선수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도 정리돼 있다. 페널티 지역에서의 과감성, 공중 볼 경합, 순간 판단 능력, 원터치 패싱 향상 등 구체적이다. 일본 축구의 전체 비전은 단순히 승리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매혹적인 경기를 하는 것’ ‘세계 기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최고가 되는 것’이다.
일본 축구의 개혁은 이상적인 상황을 먼저 설정하고 그에 필요한 현실적 내용들이 무엇인지를 추론해 실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월드컵 우승’은 당장 실현 가능한 목표라기보다는 언젠가 도달해야 하는 지향점으로 제시됐고, 일본은 이에 필요한 내용들을 보완하면서 진화하고 있다. 꾸준한 개혁의 성과로 두꺼워진 선수층과 조직력을 갖추고 2018, 2022년 연속 월드컵 16강에 올랐던 일본은 이제 8강 이상을 노리고 있다. 8강 이상 진출하면 월드컵 우승도 멀지 않다. 또한 월드컵 우승을 하지 못하더라도 일본은 이 목표를 위해 계속 진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 50년, 100년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일본 축구의 저력은 그래서 무섭다. 이 추세라면 우승도 꿈만은 아니다. 이런 개혁을 추진할 때 일본 축구협회의 역할이 컸다. 개혁에 실패한 한국 축구와 비교되는 일본 축구의 상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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