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핵 국가(nuclear power)’라고 부르며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 취임 첫날 백악관에 입성한 뒤 “난 김정은과 매우 우호적이었고 그는 나를 좋아했다. 나는 그를 좋아했고 매우 잘 지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그는 핵 국가다. 우리는 잘 지냈다. 그는 내가 돌아온 것을 반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핵 국가’라고 명시적으로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 국가’ 언급은 북한이 핵무기를 가졌어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오랜 기조에서 벗어난 정책 탈선이다. 이 발언은 ‘8년 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북한을 주요 위협으로 지목했는데, 조 바이든 대통령은 어떤 위협을 지목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많은 위협이 있는데, 북한 문제는 잘 풀렸다고 생각한다”며 김정은과의 대화 재개 가능성을 거론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후보자도 일주일 전 의회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을 ‘핵 국가’로 지칭해 핵보유를 인정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을 빚은 바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북한 비핵화라는 쉽지 않은 ‘빅딜’보다 핵 군축 또는 동결에 기초한 ‘스몰딜’을 추진하고 있다는 관측도 낳았다. 이에 우리 외교부가 “북한 비핵화는 한미와 국제사회가 일관되게 견지해 온 원칙”이라며 반박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런 목소리는 들리지 않은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는 ‘미국 최우선의 시대’ 개막 선언이었다. 그는 미국을 “세계의 경외심과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 ‘현대판 제국’이 되겠다는 욕심마저 드러냈다. 19세기 말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의 보호무역과 영토 팽창을 거론하며 멕시코만을 미국만으로 명칭을 바꾸고 파나마운하 운영권을 되찾아 오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평화 중재자(peacemaker)와 통합자(unifier)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은 언제든 직거래할 수 있는, 그래서 자신에게 ‘평화 중재자’라는 업적을 만들어 줄 상대일 것이다.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리더십 공백 상태에 있는 한국에는 당장 무거운 숙제를 던졌다. 트럼프 2기 출범은 한미 동맹관계는 물론 북핵에 맞설 확장억제의 장래마저 불확실하게 만들고 있다. 전방위로 외교력을 가동해 미국의 새 한반도 정책에 우리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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