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가 군에 남긴 3가지 교훈[윤상호 군사전문기자의 국방이야기]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13일 23시 09분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계엄군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진입을 시도하며 국회 관계자 등과 대치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계엄군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진입을 시도하며 국회 관계자 등과 대치하고 있다. 뉴시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12·3 비상계엄 사태’는 부정선거 망상에 빠진 군 통수권자와 국방 수장을 정점으로 정치적 맹종주의와 연고주의, 진급에 눈이 먼 군인들이 주도한 군사반란이자 내란이라는 결론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10·26 사태’ 이후 45년간 쌓아올렸던 군의 정치적 중립이 모래성처럼 무너졌고, 영화 속 음모로만 여겨졌던 비상계엄의 실체가 속속 드러나면서 국민이 받은 충격과 배신감은 가늠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다. 국방부를 20년 이상 출입하면서도 군의 반헌법적 계엄 망동을 감시하고, 견제하지 못한 필자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든다.

그럼에도 뼈아픈 교훈 3가지를 결코 외면해선 안 될 것이다. 우선 이번 사태는 오랜 세월 군에 켜켜이 쌓여온 치부와 폐습, 부패의 총합이 그 촉매제가 됐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특히 계엄 사태의 핵심 배후로 경찰에 구속돼 수사를 받고 있는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은 과거 근무 인연과 진급을 미끼로 현역 후배들을 계엄 사태에 회유하고 포섭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계급 사회인 군대에서 “진급에 목숨을 건다”, “진급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는 말이 통용되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진급을 위해서라면 국민과 나라도 배신하느냐”는 따가운 비판 여론이 쏟아지면서 “자괴감이 든다”, “더 이상 군에 미련이 없다”면서 군복을 벗겠다고 하소연하는 군 관계자들이 적지 않다.

정식 지휘 계통을 건너뛴 비선 조직이 국가의 근간을 뒤흔드는 계엄 사태를 주도한 정황도 충격적이다. 그 배경에는 곪을 대로 곪은 군내 인사 적폐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매년 인사철만 되면 군 안팎 곳곳에 줄을 대고, 예비역을 동원해 특정 출신이나 특정 인사를 올리도록 한다는 얘기는 지금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능력보다는 지연을 앞세워 어떤 상관과 근무했는지가 진급을 좌우하는 주요 잣대가 돼 버리고, 끼리끼리 끌어주고 당겨주는 정실 인사의 현실을 개탄하는 군 관계자들을 지금도 찾아보기가 힘들지 않다. ‘인사가 만사’라는 것은 고금의 진리다. 그릇된 인사가 국가와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교훈을 이번 사태에서 되새겨야 할 것이다.

‘햇볕이 안 드는 음지에는 반드시 곰팡이가 피고, 종내에는 기둥까지 썩게 만든다’는 교훈도 빼놓을 수 없다. 이번 계엄 사태의 기획을 주도한 세력으로 노 전 사령관과 문상호 정보사령관 등 정보사 인맥들이 지목된다.

이들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의 강제 구금과 선관위 서버 확보 등 계엄의 핵심 설계도를 그리고, 실행을 시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대북 및 해외 정보 수집과 첩보 업무를 전담하는 정보사는 군에서도 음지 중의 음지 부대로 통한다.

군 내부에서조차 정보사 내부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다고 여겨온 게 사실이다. 군 관계자는 “정보사는 대북 보안을 이유로 비밀주의와 사각지대의 온상으로 사실상 견제 감독이 거의 이뤄져 오지 않았다”고도 했다.

이 때문에 비뚤어진 정치의식을 가진 전현직 정보사령관이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서 정보사를 계엄 세력의 ‘전위부대’로 오염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지적이다. 군 당국자는 “감시와 견제를 받지 않는 조직은 곪을 수밖에 없고,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한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 교훈은 민주주의와 국가안보는 군뿐만이 아닌 국민 모두가 지켜내야 한다는 것이다. 계엄군이 국회와 선관위 등으로 들이닥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그들을 막아선 것은 더 이상 국가안보와 군이 공포정치의 도구로 전락해선 안 된다면서 서슴없이 몸을 던진 다수 국민이었다. 일부 시민은 국회 앞에서 계엄군이 탄 전술차량을 맨몸으로 막아 서기도 했다.

북한에 주는 교훈도 적지 않다. 군 안팎에서는 작금의 정치적 혼란과 불안정을 틈타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대한민국의 성숙한 민주주의는 어떠한 대내외 안보 위기도 극복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고 필자는 본다. 오히려 북한에 오판하지 말라는 경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과거 활발한 비난 공세와 달리 여러 차례 사실 위주의 부정적 보도에 그친 것도 그런 정황을 뒷받침한다.

안보에는 여야, 보수·진보가 없다고 하지만 정권의 이념적 성향에 따라 안보가 갈지자를 그리고, 국민 갈라치기를 거들기도 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군이 더 이상 정치와 이념 투쟁의 도구로 악용되지 않길 바란다. 너무나 큰 대가를 치렀지만, 이제라도 군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할 것이다.

#비상계엄#군사반란#군부 부패#진급 문제#민주주의#국가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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