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진심[이정향의 오후 3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12일 23시 24분


코멘트

〈76〉토머스 카터의 ‘코치 카터’

1999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소도시 리치먼드. 스포츠용품점을 운영하는 40대의 켄 카터는 모교로부터 구제불능 상태인 농구팀의 코치직을 의뢰받는다. 그는 고교 시절, 미국 최고의 득점 기록을 세우며 장학생으로 대학에 갔지만, 모교인 리치먼드 고교는 우범 지역에 위치한, 입학생 중 반도 졸업을 못 하는, 대학 진학보다는 감옥행이 훨씬 많은 최악의 학교다. 카터는 팀워크는커녕 서로 싸움질을 해대는 이 꼴등 팀에 첫날부터 가혹한 숙제를 내준다. 학점은 C+ 이상일 것. 카터는 이 아이들을 농구 장학생으로 대학에 진학시키고자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약과 범죄에 휘말려 죽거나 감옥에 갈 거란 걸 잘 알기에.

이정향 영화감독
이정향 영화감독
카터의 혹독한 훈련 덕에 경기 때마다 승승장구하지만 공부와는 더 멀어진다. 카터는 약속한 학점을 따기 전에는 연습도, 경기도 중지한다며 체육관 문을 걸어 잠근다. 경기에 못 나가자 학생보다도 학부모들이 더 반발한다. 불우한 아들이 인생을 통틀어 유일하게 빛날 수 있는 기회인데 카터가 그것을 빼앗았다며 그를 교육위원회에 제소한다.

좋은 부모는 자식에게 이로운 것을 주려고 한다. 눈앞의 이익과는 멀어도 자식의 미래를 위해 원성을 감수한다. 무책임한 부모는 자신의 편의를 위해 자식에게 해가 되더라도 그들이 원하는 걸 준다. 자식 입장에선 후자가 자신을 더 사랑하는 부모 같다.

리더도 마찬가지다. 농구 코치도, 정치인도 좋은 리더의 자질은 똑같다. 당장 환심을 사는 정책은 장기적으로 국가를 망가뜨릴 수 있지만 우매한 국민들은 그런 정치인에게 열광한다. 편 가르기 하며 점수를 따는 건 무책임한 리더가 세력을 확장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제대로 된 리더라면 절대 쓰지 않을 방법이다. 카터는 승리가 팀워크에서 나온다는 걸 항상 강조하며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는다. 그 팀엔 명문 사립고교를 포기하고 전학 온 자신의 아들도 있지만 카터에겐 학생들 중 하나일 뿐이다.

카터 코치는 앞날이 창창한 학생들에게 고교 시절이 그들 인생의 최고 전성기가 되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가난한 부모의 전철을 밟아 인생의 낙오자가 되는 걸 막고 싶었다. 그들이 더 큰 꿈을 꾸고, 펼칠 수 있게 돕고 싶었다. 어차피 대학도 못 갈 테니 지금이라도 농구로 반짝 유명해지는 게 아들에게 최선이라는 부모들. 카터와 부모 중 누가 더 이 아이들을 아끼는 걸까? 다행히 아이들은 카터의 진심을 깨닫고 학업에 열중했고, 모두 농구 장학생으로 대학에 진학한다. 좋은 리더는 좋은 부모와 같다. 좋은 리더는 무책임한 부모보다 덜 달콤하지만 진심이다. 카터는 현재, 불우한 학생들을 돕는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영화 속 인물들 모두 실존 인물이다.

이정향 영화감독
#토머스 카터#코치 카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