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홍 칼럼]서울에서 이길 비법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1월 23일 23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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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요한 혁신안 尹 뜻 담겼는데도 저항 부딪혀
尹, 김기현 윤핵관 체제 부숴 결자해지하고
의원 정수 감축, 특권 전면 폐기 등 국회 개혁과
미래 지향적 테크노크라트 영입 진력해야

이기홍 대기자
이기홍 대기자
개혁은 타이밍인데, 강서 보선 참패 한 달 반이 되도록 국민의힘 혁신은 지지부진하다.

도대체 왜 저럴까. 인요한 혁신위에는 이른바 ‘윤심’이 실리지 않은걸까.

필자가 취재해본 결과, 현재 국힘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은 전형적인 당내 기득권 세력의 저항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인요한의 혁신 요구는 윤석열 대통령의 뜻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수세에 몰린 기존 체제 핵심들은 이런 논리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속고 있다. 김한길(국민통합위원장)이 인요한을 앞세워 김기현을 내쫓고 당을 접수해서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그러면서 “소는 누가 키우나” 논리를 퍼뜨렸다. 물론 턱도 없는 논리다. ‘검사 내리꽂기’ 같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여당 텃밭들은 새로운 얼굴이 나서도 뺏길 가능성은 크지 않다.

결국 “소는 누가” 주장 속에는 “우리를 내쫓으면 누가 대통령을 보호해 주겠느냐‘는 반(半)협박이 은밀히 숨겨져 있다. 집권 중후반기 레임덕을 최소화하려면 오히려 윤핵관을 늘리고 힘을 키워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심지어 ‘대통령이 잘못해 지지도가 떨어진 건데 왜 우리한테 뒤집어씌우나’ ‘야당은 김건희 특검을 밀어붙이는데 결속을 다져도 모자랄 판에 내부총질이나 해서 되겠느냐’ 식의 주장까지 은밀히 퍼뜨린다.

간특한 논리다. 개국공신이라고 거들먹대던 자들이 새 왕조의 개혁으로 토사구팽 위기에 처하자 반발하며 모든 걸 권력 암투극으로 색칠하는 진부한 사극장면이 연상된다.

물론 쇄신 대상 중진의 개념정의는 보다 정교해져야하며, 지역구 특성을 가리지 않고 다선이라고 무조건 내모는 식의 개혁은 안된다.

하지만 대선 보선 승리로 순풍에 돛을 올렸던 새 정권의 지지도를 순식간에 곤두박질치게 만든 핵심 책임자들이 권력을 더 누리겠다며 반발하는 모습은 추하기 그지없다. 희대의 당 대표 경선 막장드라마를 주도하고 달콤한 과실을 따먹었으면 이제 정권이 처한 위기와 지지층 여망을 저버린 책임을 조금이라도 느껴야 마땅하지 않은가.

해법은 간단하다. 대통령이 결자해지(結者解之)해야 한다.

김기현 체제와 윤핵관 세력은 윤 대통령이 만든 건축물이다. 직접 부수고 재건축해야 한다. 인요한에게 힘을 실어줬던 대통령이 좌고우면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혁신이 주춤하는 현 국면이 장기화되어선 안 된다.

물론 실행 방법에서는 고단수의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내몰 듯 하지 말고, 대통령이 직접 “좀 참고 도와달라. 이번엔 귀하가 희생해달라”고 하면 더 이상 저항하지 않을 것이다.

한 윤핵관 핵심인사는 “대통령이 희생해달라고 하면 나는 백프로 희생한다, 하지만 바람에 밀려 강제로 날아가는 모양새로는 죽어도 못나간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여권 전체를 재건축한다는 대의에 동참해 자기 방을 비워주는 모양새를 갖춰줘야 한다.

그러고는 전선(戰線)을 국회 개혁으로 집중해야 한다. 이번 총선은 여든 야든 국회 개혁을 진정성 있게 결심하고 실천 의지를 보이는 쪽이 승리한다.

최악의 21대 국회를 겪은 국민은 진저리를 치면서 묻고 있다. 지난 3년 7개월간 국회는 뭘 했는가. 헌정 이래 지금까지 범죄 혐의자 한 사람을 방탄하려고 국회가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한 전례가 있었는가. 180석을 몰아줬더니 건국 이래 존중돼온, 심지어 군사독재하에서도 이어져온 민주공화정의 최소한의 상식 전통 관례마저 다 무시되고 짓밟히지 않았는가….

그냥 우리를 찍어달라가 아니라 정말로 완전히 다른 국회를 만들 청사진과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의원수를 대폭 줄이고, 세비를 반으로 줄이고, 180가지에 달하는 의원 특권을 모두 폐지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전국을 7개든 8개든 권역으로 나눠 전국 순회 국회개혁 토론회를 열어 분출되는 국민의 소리를 집대성해 공약으로 내걸고 이걸 실천할 수 있게 표를 달라고 해보라.

그리고 누구를 모셔 오느냐에 집중해야 한다. 어떤 인재를 데려와야할지 기준은 아주 간단 명확하다. 서울에서 이기고 싶으면 서울의 특징을 보면 된다. 첫째 젊은층이 많고, 둘째 중도층이 많으며, 셋째 고학력층이 많다.

서울의 고학력 젊은 중도층 유권자 앞에 ‘낡은 좌파이념에 찌든 운동권 출신 vs 미래를 얘기하는 프레시한 테크노크라트’를 제시하면 누굴 택하겠는가.
‘죽창가 반일 반미를 외치는 우물안 개구리 vs 세계를 무대로 경험을 쌓고 젊은이들의 미래 먹거리인 인공지능(AI) 우주항공 분야에서 성과를 거둬 온 과학기술인’을 제시하면 누굴 택하겠는가.

연예인 등 유명인사 깜짝 영입은 하루치 효과 일뿐이다. 얼굴은 생소해도 이력을 보니 고개를 끄덕일 만한 사람을 찾아야 한다. 이념에 찌든 머리로는 감히 엄두 낼 수 없는 실용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인재들로 쫙 깔아야 한다.

서울 참패의 길도 선명히 보인다. 민주당이 86세력이나 그 후배 한총련 등 이념운동권 세력에게 공천 특혜를 주면 패배를 자초하는 길이 된다. 마찬가지로 여당이 검사 출신, 대통령실 출신에게 공천 특혜를 준다면 참패행 고속열차 티켓이 될 것이다.

MBC YTN 등 문재인 정권 때 발탁된 인사들이 경영권을 쥐고 있는 방송사 간부진과 좌파 인터넷 유사 언론들은 여당이 총선에 이기면 자신들의 운명이 곤두박질친다는 절박감을 갖고 생사를 건 진영방송에 나설 것이다.

좌파 진영에선 벌써부터 ‘여사 측 비례대표 리스트’ 등의 루머를 퍼뜨리고 있다. 대통령비서실장 가족 등 정권 핵심 주변을 노린 사냥도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들은 여당 공천 과정에서 의심스러운 이름이 한두 명이라도 나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여사 공천 개입’ 같은 필승 프레임을 짜 만들기 위해서다.

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공천의 독립성 공정성을 보장할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윤 대통령이 공천 독립성 보장을 분명히 못박아 메시지 오독(誤讀) 소지를 차단해야 한다. 그러면서 대낮에도 등불을 들고 참된 사람을 찾아다닌 디오게네스처럼 인재를 찾아 나서야 한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
#개혁#타이밍#강서 보선#참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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