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주 공격에 대비해야 한다”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0월 8일 23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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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3일 김정은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안내를 받으며 러시아 극동 아무르 지역의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를 돌아보고 있다. 동아일보DB
지난달 13일 김정은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안내를 받으며 러시아 극동 아무르 지역의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를 돌아보고 있다. 동아일보DB
북한에서 한국 축구가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자랐다. 월드컵 녹화 중계 때에 3개 팀만 공개되는 조가 늘 있었는데, 미국 일본도 공개하면서 한 개 나라만 못 한다면 당연히 남조선일 게 뻔했다.

자라는 내내 월드컵엔 늘 3개 팀만 공개되는 조가 꼭 있었다. 매번 월드컵에 나갈 정도면 축구 수준이 매우 높을 것이라 짐작됐다. 16강 대진표에 16개 팀이 모두 공개되면, 남조선 팀이 예선 탈락한 것이어서 매우 아쉬웠다. 돌아오는 월드컵마다 이번엔 남조선이 16강을 통과하라고 속으로 응원했다. 아마 북한 사람들 모두가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주성하 기자
주성하 기자
2002년엔 탈북해 한국에 와 있을 때라 한국의 4강 진출을 목청껏 응원할 수 있었다. 마침 남북 정상회담이 끝난 직후라 북한도 한국의 4강 소식을 굳이 머리를 짜내지 않고 공개했다. 이후 한국의 16강 진출은 빈번해졌다. 북한은 16강전 8경기 중 7경기만 방영했다. 그러니 북한 사람들도 한국의 16강 진출을 당연히 알 수 있다. 북한과 하는 경기가 아니라면 북한 사람들은 같은 민족인 한국팀을 응원한다. 그게 북한의 정서다.

그런데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선 ‘괴뢰’ 팀이라는 명칭이 등장했다. 나도 놀랐지만 북한 사람들도 많이 놀랐을 것이다. 하지만 괴뢰든 남조선이든 이름 때문에 같은 민족을 응원하는 북한의 정서가 바뀔 일은 없을 것이다.

TV에 괴뢰라는 단어가 뜨는 순간 아마 대다수 북한 사람들은 ‘남조선과의 관계는 끝났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괴뢰는 대북 지원이나 개성공단 재개와 같은 타협 정책이 윤석열 정부 기간엔 절대 없다는 것을 북한 주민들에게 알리는 선언이기도 하다.

아시안게임 직전 북한은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북한 보도들엔 “앞으로 무기를 러시아에 팔아 잘살 수 있다”는 뉘앙스가 강하게 깔려 있었다. 그래서 북한 사람들은 지금 ‘남조선 지원은 당분간 기대할 수 없지만, 대신 러시아에서 뭘 좀 많이 받아오겠구나’라는 희망을 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주는 양이 시원치 않거나 또는 지원이 국방 분야에 한정돼 주민들이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일이 당연히 있을 수가 있다. 그러면 사람들은 ‘또 속은 내가 바보지’라고 생각하며 김정은을 한심한 무능력자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앞으로 1년 안에 이런 전개가 벌어질 수 있다.

오랜 경험상 이럴 때가 남북 관계가 가장 악화될 때이다. 북한이 주민 시선을 돌리기 위해 도발을 택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우리는 취약한 곳을 포착해 빨리 보강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어디가 취약할까. 김정은의 입장으로 빙의해 고심해도 한국의 빈틈은 잘 보이지 않는다. 오랜 경제난으로 북한의 작전 실행 능력은 점점 떨어져 가고 있고, 반대로 우리 군은 연평도 해전이나 천안함 도발 때보다 훨씬 강해졌다. 북한은 까딱하면 한 대 때리려다 열 대를 얻어맞을 수가 있다.

하지만 취약점도 분명 있다. 김정은이 반년 내내 매달리고 있고, 러시아까지 가서 기술을 구걸한 정찰위성이 그것이다. 정찰위성은 가격도 비싸고, 제대로 기능을 수행하려면 최소 다섯 개는 가동해야 해서 북한 입장에선 운영 실익이 낮다. 그런데 김정은은 왜 이토록 집착하는 것일까. 다른 꿍꿍이가 있기 때문이다.

위성을 특정 궤도에 올리는 기술을 획득하면 우주에서의 공격이 가능하다. 가령 정찰장비 대신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교란 장비를 올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는 큰 기술이 필요 없고, 수십 kg 무게의 장비로도 한국 전역의 통신을 마비시킬 수 있다. 이미 북한은 한국을 향한 GPS 교란 작전을 수없이 진행한 전과가 있다. 지상 공격은 범위의 한정으로 큰 힘을 쓸 수 없지만, 500km 미만의 우주에서 내려쏘는 전파 방해는 엄청난 위력을 가진다.

우리는 정찰위성이라니까 진짜 정찰위성인 줄 알고 있다. 우주에서의 전파 공격은 대응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반격은 할 수 있다. 가령 북한이 전파 교란을 일으키면 우리는 전파 송신을 통해 북한 모든 가정의 TV에 태극기를 휘날리게 할 수 있다. 그런 능력 정도는 확보해 놓아야 북한이 함부로 도발을 못 하게 억제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대북방송 송출 예산 60억 원이 내년에는 전액 삭감되는 게 현실이다. 획기적으로 늘려도 모자라는데 거꾸로 간다. 이번에도 또 당한 뒤에 정신을 차릴 것인가.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우주 공격#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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