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자의 사談진談]소리없는 카메라가 어떤 진실을 포착해낼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26일 23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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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미국인 선수인 존 휴스턴이 티샷을 하고 있다. ‘찰칵’ 소리를 내지 않는 미러리스 카메라의 등장으로 골프 선수의 티샷을 가까이에서 촬영할 수 있게 됐다. 캘거리=AP 뉴시스
지난달 18일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미국인 선수인 존 휴스턴이 티샷을 하고 있다. ‘찰칵’ 소리를 내지 않는 미러리스 카메라의 등장으로 골프 선수의 티샷을 가까이에서 촬영할 수 있게 됐다. 캘거리=AP 뉴시스
‘찰칵’이라는 단어는 사진을 찍는 행위를 묘사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된다. 기계식 카메라의 셔터막이 올라갔다가 내려가며 내는 소음을 표현한 이 의성어는 마우스를 누를 때 나는 소리 ‘클릭’처럼 수많은 신문 기사의 제목으로 활용돼 왔다. 하지만 취재 현장에서 이 ‘찰칵’ 소리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소리 나지 않는 미러리스 카메라의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이런 카메라에는 반사식 카메라(DSLR)에 있던 ‘미러박스’가 없다. 디폴트 값이 ‘무음’이다. 필요에 따라 ‘찰칵’ 소리를 일부러 만들어 낼 수는 있다. 전자기기처럼 그 볼륨을 상황에 맞게 조절하는 것도 가능하다. 소리의 제약으로 사진을 찍지 못했던 현장에서도 이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됐다.

최혁중 사진부 차장
최혁중 사진부 차장
이런 사진 촬영의 변화가 가장 잘 드러나는 대표적인 장소가 드라마와 영화 촬영장이다. 이제는 촬영장에서 배우와 동선만 겹치지 않으면 모든 장면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다. 예전에는 소리를 줄이기 위해 헝겊 등의 방음제로 카메라를 싸매거나 연속 촬영 대신에 한 컷 한 컷 조심스레 찍는 방법을 택했지만 아무래도 완벽하지 않았다. 촬영장의 동시녹음팀과 마찰을 빚기 일쑤였다. 미러리스 카메라가 보급되면서 질이 좋은 ‘A컷’을 많이 찍을 수 있게 돼 포토샵 등의 후보정 작업이 줄어들었고 이는 포스터나 보도자료, 광고 사진 등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갤러리들의 휴대전화 촬영 소리로 논란이 많던 골프장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예전에는 선수의 스윙 전이나 공이 맞은 이후의 장면만 촬영이 허용돼 역동성이 떨어졌다. 이제 사진기자들은 경기운영위원회의 허가를 받아 선수의 시선에 방해가 안 되는 곳에서는 셔터를 마음껏 누를 수 있다. 공이 클럽페이스에 맞기 전부터 클럽페이스에 맞는 임팩트 순간까지 연속 촬영이 가능해져 속도가 빠른 골프 클럽이 휘어지는 역동적인 장면까지 포착할 수 있게 됐다.

생태 사진을 찍을 때도 효과가 크다. 셔터 소리와 같은 기계음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새나 야생동물들을 이제는 보다 쉽게 찍을 수 있다.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바둑에서도 바둑알 놓는 순간인 착수를 촬영할 수 있게 됐다. 오페라나 뮤지컬, 연극 등 라이브 공연도 기록되고 있다. 셔터 소리에 놀라 울음을 터뜨리곤 했던 돌잡이 아기들의 모습을 찍을 때도 도움이 된다. 슬픔이 가득한 장례식장을 기록할 때도 유족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지킬 수 있다. 단어 하나하나가 중요한 대통령의 회담장에서 워딩을 받아 적어야 하는 취재기자나, 정치인들의 귓속말을 알아들어야 하는 취재기자들도 상대를 방해하지 않고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됐다.

물론 단점도 있다. 인물 촬영을 할 때 사진에 찍히는 사람은 촬영 종료 여부를 알 수 없다. 이는 촬영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인데, 그러다 보니 전자 셔터음을 일부로 켜놓고 취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소리 없는 전기차를 운전할 때 일부러 배기음을 넣는 것처럼 말이다. 너무 많이 찍게 되는 것도 단점이다. 미러리스 카메라는 물리적으로 셔터막이 열리고 닫혀야 사진이 찍히는 DSLR 카메라보다 셔터 스피드가 빠르다. 초당 최대 30장 정도가 찍히는데, 취재한 사진 중 괜찮은 사진을 고르려고 빨리 넘기다 보면 꼭 동영상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그 덕분에 취재한 사진에서 ‘A컷’을 찾아내는 마감 작업이 오래 걸리고 있다.

사진기자의 카메라에서 나는 ‘찰칵’ 소리는 취재 현장에서 일종의 기준점이었다. 정치인들에게는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고 사건 현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장면을 기록하는 순간이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포츠 스타에게는 영광의 순간이었을 것이고 포토라인에 선 범죄자에게는 두려움의 소리였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필자는 올해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회담을 DSLR 카메라로 취재했는데, 이때 프랑스 대통령실 관계자로부터 소리를 줄여달라는 지적을 받은 경험이 있다. 순간을 기록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상황에서 취재 제한을 받으니 당황스러웠지만, ‘찰칵’ 소리가 당연하던 과거의 카메라들은 어느덧 취재 현장에서 천덕꾸러기가 됐고 소리 없는 카메라가 새로운 기준이 됐음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고성능 미러리스 카메라의 등장으로 자유롭게 찍을 수 있는 현장이 더 늘어나고 지금껏 보기 어려웠던 장면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됐으니 사진기자 입장에서는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아 보인다. 쥐도 새도 모르게 현장을 기록할 수 있는 ‘조용한 카메라’로, 앞으로 어떤 진실들이 기록될지 궁금해진다.



최혁중 사진부 차장 sajinman@donga.com


#소리없는 카메라#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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