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 칼럼]산업화의 첫걸음을 내디딘 반세기 전 여름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14일 23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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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보국의 임무 달성한 포항제철의 기적
철강 경쟁력 유지는 미래 가름하는 중대 이슈
無탄소 신기술로 ‘제2의 포항 신화’ 기대한다

김도연 객원논설위원·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김도연 객원논설위원·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철강은 국가의 뼈대를 이룬다. 자동차, 조선, 건설, 그리고 화학 등 거의 모든 산업에서 철강은 원천소재다. 철강을 ‘산업의 쌀’이라 부르는 것도 전혀 과장은 아니다. 산업만이 아니라 우리 인체에서도 철의 역할은 핵심 중의 핵심이다. 붉은 혈액 속에 들어 있는 3∼4g 정도의 철분은 신체 곳곳으로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을 구성한다. 철분이 부족하면 체력이 떨어지고 빈혈이 찾아온다.

인류가 철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약 3000년 전부터인데, 청동(靑銅)보다 훨씬 강한 철제무기를 지니는 일은 끝없었던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이었다. 즉, 부족의 목숨을 지키며 번성하는 일이었기에 더욱 강하고 많은 철을 얻기 위해 인류는 진력하고 진력했다. 그러나 철강의 대량생산은 19세기 중반에 들어서야 영국 등에서 본격화되었고, 이는 유럽 제국의 세계 진출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포항종합제철소(현 포스코)는 대일청구권 자금과 일본으로부터의 상업차관으로 1968년부터 건설하기 시작했다. 기술도 일본에 의존했다. 우리 기술 인력은 일본 현지에서 연수를 받았으며, 많은 일본 기술자들이 포항에 와서 현장을 지원했다. 그리고 1973년 6월 9일 첫 쇳물을 뽑아냈다. “선조의 핏값으로 짓는 제철소가 실패하면 영일만에서 죽겠다”라는 각오를 다지며 누구나 불가능으로 여겼던 꿈을 이룬 당시의 모든 분들께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같은 해 7월 3일에는 100만 t 생산 규모의 제철소 준공식이 있었다.

1992년 가을, 철강 2100만 t 생산시설을 완성한 박태준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묘소를 찾아 제철보국(製鐵報國)의 임무 달성을 보고했다. “용광로 구경조차 해본 적 없는 39명의 창업요원을 이끌고 포항의 모래사장을 밟았을 때는 각하가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터무니없는 모략과 질시와 수모를 받으면서 그대로 쓰러져 버리고 싶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절절함이 가슴을 친다. 일본과의 협력은 일단 친일(親日)이라며 매도하는 정치인들이 요즘도 허다한데, 이런 모략에 의해 박태준 회장이 쓰러졌으면 대한민국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 이후 우리의 철강산업은 새로운 기술과 공법으로 계속 발전하였으며, 이제는 약 7000만 t의 생산 규모를 갖게 되었다. 양적 측면으로는 세계 6위에 올라 있지만 기술적으로는 정상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 엔지니어들의 빼어난 기술력은 크게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당연히 철강 산업의 경쟁력을 계속 지키는 일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름하는 중차대한 이슈인데, 그 관건은 무(無)탄소 기술 개발이다.

현재의 제철 기술은 철광석(Fe₂O₃ 혹은 Fe₃O₄)을 석탄, 즉 탄소(C)와 반응시켜 철(Fe)을 분리해 내는 방식이기에 다량의 온실가스 배출은 필연적이다.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은 연간 약 7억 t을 상회하는데, 실제로 그중 1억 t 정도는 철강 산업이 만드는 것이다. 온실가스는 세계 여러 나라의 합의로 이제는 규제 대상이 되었고, 대한민국도 지난 문재인 정부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2018년 대비 40%, 즉 3억 t 정도를 감축하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그런데 이는 탈원전만큼이나 산업 현실을 도외시한 무모하면서도 비합리적인 정책 결정이다.

1990년 대비 2030년까지 55% 감축을 목표로 제시한 유럽연합(EU)은 이미 오래전에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이 정점을 찍었고 그 후 계속 하향세를 보이고 있는 경우다. 즉, 유럽의 온실가스는 1990년에 약 47억 t이었지만 2020년에는 31억 t으로 줄었다. 결국 EU의 계획은 앞으로 7년 동안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27개국 5억 명 인구가 10억 t을 감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은 2018년 10억6000만 t이던 온실가스 배출을 2030년까지 12%, 즉 1억3000만 t을 감축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기간에 대한민국은 40%, 즉 3억 t을 감축할 수 있을까? 게다가 우리는 아직도 중화학공업이 EU나 일본보다 훨씬 중요하며 온실가스 배출량이 정점에 이른 경우도 아니다.

그러나 포스코가 내년 6월에 수소환원제철 파일럿 설비를 착공한다는 소식을 들으며, 기적을 이루었던 포항에 다시 한 번 기대를 걸어 본다. 수소(H₂)와 철광석이 반응해 CO₂ 대신 물(H₂O)이 나오는 꿈의 신기술이다. CO₂ 배출을 큰 폭으로 줄이는 제철기술 개발은 대한민국 발전과 더불어 온 인류의 지속 가능에 크게 기여하는 일이다. “제2의 포항 신화” 탄생을 간절히 기대한다.


김도연 객원논설위원·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無탄소 신기술#포항제철의 기적#제2의 포항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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