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납 세금 안내려고 로또 1등 당첨금까지 빼돌린 철면피들[횡설수설/이정은]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23일 2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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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있고 왕도 있지만 더 무서운 건 세금징수관이다.” 고대 수메르인의 격언 중 하나였다는 이 한 문장은 세금 납부가 얼마나 오래된 인류의 숙제였는지를 보여준다. 세금을 걷으려는 국가와 어떻게든 이를 피해 보려는 납세자들의 숨바꼭질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다. 그 과정에서 세금을 회피하기 위한 각종 ‘창의적 능력’이 발현됐다지만, 탈세가 처벌 대상인 범죄라는 사실 또한 역사적으로 예외가 없었다.

▷로또 1등에 당첨되고도 연체된 세금을 납부하지 않고 버티던 체납자가 최근 국세청에 적발됐다. 그는 20억 원이 넘는 당첨금을 받고도 내야 할 수억 원의 연체 세금을 처리하지 않았다. 대신 돈을 가족 계좌로 이체하거나 현금, 수표 등으로 인출하며 빼돌리려 했다고 한다. 이처럼 1등 혹은 2등 거액 로또에 당첨됐는데도 밀린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가 적발된 이는 36명에 달한다. 없던 돈이 하늘에서 떨어졌는데도 그걸로 세금은 내기 싫다는 심보다.

▷국내 세금 체납자는 현재 132만 명, 밀린 체납액은 100조 원이 넘는다. 내야 할 세금이 1억 원 이상 쌓여있는 사람만 16만 명에 달한다. 사업 실패 등 안타까운 사연도 없지는 않겠으나 체납자 중에는 고의로 재산을 은닉하고 호화 생활을 누리는 사람도 상당수다. 고액 체납자이면서도 개인금고에 현금 4억 원을 숨겨놨거나, 배우자 명의로 재산을 돌려놓고 부촌의 고급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례가 이번 국세청 조사에서 줄줄이 나왔다. 하루 단위로 늘어나는 연체료 따위는 신경 안 써도 되는 부자들이 아니고서야 보이기 힘든 배짱이다.

▷‘유리지갑’ 직장인들이야 고민할 여지조차 없다지만 숨길 구멍이 있는 경우엔 절세와 탈세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올 초에는 유명 웹툰 작가와 프로게이머, 운동선수 등이 줄줄이 세무조사를 받았다. 법인 명의로 산 고가의 슈퍼카를 사적으로 굴리고, 친인척을 직원으로 등록해 허위 인건비를 지급하는 등 각종 수법이 총동원되다시피 했다. 헌법에 명시되고 교과서로 가르치는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를 우습게 본다. 탈세범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의 전례들은 이들을 더 대담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최근엔 해외 암호화폐 시장 등을 이용해 조세당국의 추적을 빠져나가는 지능범들도 많아지는 추세다. 조세 정의가 무너지면 “성실한 사람들만 세금을 뜯긴다”는 반발이 커질 수밖에 없다. 혈세 징수에 앞서 효율적으로 투명하게 쓰이는지부터 입증하라는 항변은 정부도 한번 더 들여다볼 부분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문제점들이 악의적 체납이나 탈세의 변명이 될 수는 없다. ‘사람이 피할 수 없는 두 가지가 죽음과 세금’이라고 했던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처럼 누구도 세금을 회피하지 못하는 세상이 돼야 한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체납#세금#로또#세금징수#국세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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