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파에 놀아나지 말라[오늘과 내일/윤완준]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6일 2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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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日 강경 우파들 흘리는 내용에 흥분
쉬쉬한 대통령실, 칼자루 쥐고도 문제 키워

윤완준 정치부장
윤완준 정치부장
안보를 위해 일본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는 1.1%에 불과했다. 경제는 2.3%였다. 동아일보와 국가보훈처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달 17∼22일 진행한 조사 결과는 한국인들이 일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대통령실이 “일본에 거부감이 덜하다”고 보는 젊은층(19∼29세)도 2.2%, 3.3%만이 안보, 경제면에서 일본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여론의 반감을 뚫고 한일관계를 개선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일 굴욕외교”를 슬로건 삼아 독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문제 관련 진실을 밝히라 주장한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후쿠시마 현장을 확인하겠다며 방일을 강행했다.

민주당은 정작 왜 극우 산케이 등 일본 언론들이 약속이나 한 듯 독도, 후쿠시마 관련 보도를 쏟아냈는지 주목하지 않는다.

한일관계에 정통한 소식통은 “일본 집권 자민당 내 강경 우파들이 흘리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피격으로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파벌이다. ‘아베파’들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한일 정상회담에 나서자 초조해졌다.

‘기시다가 과거사에 대한 새로운 사죄와 반성을 표하면 안 된다.’

이게 아베파의 정서다. 독도나 후쿠시마 관련 내용을 흘리며 기시다의 한일관계 구상에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기시다도 아베파를 의식한다. 소식통은 “통절한 사죄와 반성 내용을 언급할 경우 아베파가 들고일어나 정권을 내놓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기시다에게 있다”고 했다. 기시다가 약속한 방한 때 사죄와 반성에서 진전이 있을 거라는 낙관도 어렵다. 기시다는 아베파의 공격을 피하면서 한일관계 개선을 자신의 집권 성과로 부각하려 할 것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일본 정부 내에서도 기시다가 사죄와 반성에서 진전된 조치를 내놓을 가능성을 반반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한미일 협력, 한일관계 개선 필요성에 동감한다면 기시다가 강제징용 피해자·유족들에게 사죄와 반성의 성의를 보일 수 있도록 운신의 폭을 넓혀 주는 게 필요하다. 그게 초당적 협력이다.

“민주당은 오히려 기시다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아베파에 놀아나는 것이다.”

한일관계를 오래 봐온 전문가는 이렇게 지적했다. 독도 거론은 가짜뉴스가 분명해 보인다. 기시다가 윤 대통령에게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규제를 완화해 달라고 말한 자체를 감출 일인가. 시각을 바꿔보자. 일본은 오히려 한일관계를 개선하려는 한국에 수입 규제를 풀어달라고 매달리는 셈이다. 칼자루는 한국이 쥐고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의 첫 대응은 화를 키웠다.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문제가 정상회담에서 거론됐다는 일본 언론 보도가 나왔을 때 반응은 “정상회담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였다. 거론됐다 한들 “국민 안전이 최우선”이라며 원칙대로 하겠다고 분명히 대응하면 될 일이었다. 대통령실이 쉬쉬하자 후쿠시마 관련 문제가 거론된 것 자체가 문제인 것처럼 구도가 형성됐다.

윤 대통령의 지난달 한일관계 관련 대국민 담화도 문제를 드러냈다. 윤 대통령의 할 일이 부각되지 않고 기시다 대신 변명해주는 느낌을 국민에게 줬다. 윤 대통령은 일본이 수십 차례 과거사에서 사과했다고 말할 필요가 없었다. 미래로 간다고 과거를, 피해자·유족을 잊는 게 아니라며 이들을 위해 윤 대통령이 무엇을 할지 담화에 큰 비중으로 진솔한 내용을 담았다면, 지금 여론 지형도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다.


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일본#아베파#놀아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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